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ree Ways Nov 23. 2022

그 남자의 스캔들_제주여행 첫번째 이야기

우리 지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저희는 제주로 여행을 떠나왔습니다. 함께하는 두번째 여행이에요. 3박 4일로 일정도 조금 더 길어졌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서로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아가보자고 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충격과 함께 말이죠.ㅎㅎㅎ 이번 글은 지노그림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지노그림 작가님은 신이 났습니다. 지금사진 작가님과 지마음작가가 함께 있는 단톡방에 제주에 친구가 있다고 운을 띄우더라고요.(이때 깊은 뜻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친구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어요.ㅎㅎ) 그것도 두 명이나 있답니다. 두 사람 모두 대학교 때 동기라고 했는데요. 용진이와 지수가 제주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주에 있는 동안 하루 저녁은 둘을 만나서 저녁을 먹고 싶다고 하길래, 눈치없는 우리는 우리도 데려가라고 했어요. 이렇게 된 거 괜찮다면 같이 만나자고. 성격 좋은 지노그림 작가님은 이렇게 깍두기들을 데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용진이와 지수가 부부인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지노그림 작가님이 용진이와 지수가 둘이 제주에 살고 있다고 했거든요. 알고 보니 두 분은 각각 따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그냥 친구였던 것이죠. 게다가 같은 제주에 있어도 둘은 한 번도 제주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거예요. 용진이라는 친구는 제주 토박이 분이시고, 제주에서 사업을 하고 계셨고요. 지수라는 분은 이른 은퇴를 하고 제주에 1년 살이를 하러 왔다가 10년을 살기로 마음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거나 우리 지노그림 작가님은 대학교 때 지수님을 짝사랑 했었대요. 그런데 지수님은 이미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노그림 작가님은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수님은 기억을 못한다는 사실.ㅎㅎㅎ


제주로 출발하면서부터 우리 지노그림 작가님은 얼굴이 싱글벙글입니다. 우리 지수를 만나러 가기 때문이죠. 우리 지수는 말도 예쁘고 하고, 우리 지수는 똑똑하고, 우리 지수는 멋집니다. 얼마나 우리 지수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 우리가 제주도에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냐며 지노그림 작가님을 놀립니다. 그래도 좋답니다. 평소에 시크하던 지노그림 작가님은 우리 지수 이야기만 하면 얼굴에 웃음꽃이 핍니다. (지노그림 작가님은 결혼도 하셨고 고딩이 된 딸도 있습니다. 물론 사모님도 우리 지수를 알고 있다고 하고요.ㅎㅎ)


드디어 30년 전의 짝사랑했던 그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미 용진님은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용진님은 그냥 핑계였던 것 같고, 오로지 나의 우리 지수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제주에서 맛있다는 흑돼지 전문점에서 우리는 만났습니다. 세상에나. 친한 친구라고 해서 자주  만난 줄 알았더니. 용진님은 무려 대학 졸업 후 처음 만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약 30년 만에. 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에 알아보더라고요. 물론 우리 지수님은 그 사이 몇 번 만났다고 해요.


용진님은 머리를 길러 하나로 묶은 아주 스타일리쉬한 예술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어요. 마치 제주에서 도예를 하신다고 하면 믿을 것 같았죠. 우리 지수님은 듣던대로 여성스러웠어요. 아주 단아했고, 말도 조곤조곤 얼마나 예쁘게 하시는지 같은 여자가 봐도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인정해버렸습니다. 지노그림 작가님이 왜 짝사랑했는지 알것 같다고. 그리고 여전히 좋아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습니다. 고기를 굽고, 술도 한 잔하고, 대화가 무르익어 갑니다. 지노그림 작가님의 시선은 우리 지수에게 계속해서 머무릅니다.


지노그림 작가님은 저희에게는 한 번도 시전하지 않았던 잰틀맨이 되었습니다. 물뚜껑도 따 주고, 그녀가 혹여나 취할까봐 술을 먹는 양도 조절해주고, 중간중간 괜찮냐고 체크도 해줍니다. 그녀가 말하면 무표정이었던 지노그림 작가님의 표정도 함께 웃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도 웃어줍니다. 얼마나 신경쓰고 배려하고 있는지 슬쩍 훔쳐만 보아도 알겠더라고요. 마치 다시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풋풋해 보이고, 설레여 보입니다. 현재의 친구들이 아닌 그 시절의 대학생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제주에 내려가기 전, 드디어 지노그림 작가님의 첫번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사실 제주 여행이 끝난 뒤에 책이 배송되는 것이었는데 우리 지수에게 책을 선물하기 위해 그는 인쇄소까지 가서 책을 직접 받아왔습니다. 우리 지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것이죠.ㅎㅎ 책 맨 앞장에 사인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몇 줄의 편지도 써서 우리 지수에게 책을 선물합니다. 책을 건네는 그의 표정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책을 받아 든 우리 지수님도 감격스러워 합니다. 내 친구가 책을 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여러번 책을 요리조리 뒤적여 보더라고요. 그녀의 표정과 눈빛에서 마음 속으로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 존경의 마음이 있는지, 애정이 담겨있는지가 보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식당에 도착해 약국에 다녀온다는 거짓말을 하고, 출간파티를 핑계 삼아 케익도 사고, 꽃다발도 몰래 준비했습니다. 우리 지수를 위해 꽃다발이라도 사야겠다는 지노그림 작가님의 말을 기억했던 것이죠. 자리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 출간파티를 진행했습니다. 지노그림 작가님께 꽃다발도 선물하고요. 그 꽃다발은 바로 우리 지수님의 품으로 안겨졌죠. 이쯤 되면 지노그림 작가님과 우리 지수님의 이야기만 나와서 용진님께 미안할 따름이네요. 저는 왜 인지 그 테이블이 지노그림 작가님과 우리 지수님, 두 사람의 공간으로 느껴졌거든요.ㅎㅎㅎ 혹여나 용진님이 외롭지 않으셨을까 이제와 생각해 보니 걱정이 조금 됩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러 나갔는데, 세상에나. 문을 연 카페가 없는거예요. 11월의 찬바람때문에 이리저리 많이 걷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저희는 막걸리를 한잔 더 하러 갔습니다. 지노그림 작가님과 용진님 사이에 우리 지수님이 앉으셨어요. 우리 지수님을 사이에 두고 앉아 한참이나 술잔을 부딪치고, 어릴 적 이야기도 나누며 저희는 처음 보는 분들과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저희도 낯가리는 사람들인데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좋은 분들을 만나 다음에도 제주에 오겠으니 그때도 밥을 사달라고 이야기하고, 서울에 오시면 또 뵙자는 인사도 나누며 그렇게 따뜻한 만남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죠. 우리지수님은 손에 한가득 저희를 위한 선물을 가져다 주셨는데요.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깍두기 3명을 데려간다고 해서, 저희가 남자인줄 알았던 거예요. (이번 여행에는 게스트 언니가 한 명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자 둘, 남자 둘의 여행이 되었는데 여자 둘이 따라나왔으니 깜짝 놀라신거죠.ㅎㅎㅎ 아주 맛있는 김치와 물김치, 샐러드 그리고 아주 맛있게 직접 구워주신 호밀빵까지. 저희가 다 먹을 수 없는 양의 음식들을 가져다 주셨어요. 남자 넷이 온 줄 알고 말이죠. 하지만 그 음식에 담긴 정성은 누가 뭐래도 알 수 있잖아요. 지노그림 작가님이 마음이 따뜻한 참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단 번에 알 수 있었죠.


대리를 불러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나의 짝사랑이었던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잘 살고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이 들었을까? 우리가 지금 다시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고 이전의 일들을 추억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아름다운 추억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그런데 저는 오늘 현재에도 살아있는 아름다운 추억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더라고요. 따뜻하고 풋풋하고 순수했어요. 서로를 위하는 마음, 서로를 향한 배려,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빛, 그리고 여전히 어릴 때 그 시절처럼 농담을 주고 받고 서로를 놀리기도 하면서 지금의 추억 챕터를 한 장 한 장 채워가는 그 모습이 마치 흑백 영화를 눈 앞에 펼쳐 놓은 것 같아 덩달아 제 마음도 따뜻하게 물들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나에게도 마음 속에 숨겨 둔 '우리 지수' 한 명쯤 누구나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 때의 나의 모습도 떠올려보고, 그 때의 '우리 지수'도 떠올려보면서 더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시간이 지나도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인생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네, 그가 말했던 대로 우리 지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PS: 저희와 함께 농담도 해주시고, 맛있는 흑돼지도 사주시고, 제주도 방언도 알려주신 용진님. 함께 해주셔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챙겨주시고 잘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대화로 저희를 웃게 만들어주셨던 중용의 미를 갖추신 우리 지수님도 감사드려요. 자주 뵙고 싶은 언니에요.ㅎ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맞이 문경 나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