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8일
더 이상 먼지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바닥을 닦고 닦다가 새벽녘이 되어
문을 나선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집 하나
불을 밝혀 두면 어슬렁어슬렁
계단을 내려가 칩거를 시작한다
맑은 우물 속 너와 나를 가두고
사실은 내일을 제일 기다리면서
지금은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빠져나올 수 없는 마법의 시간에
너와 나를 가둬 두고서
초점 없는 눈으로 우물 밖을 꿈꾼다
어차피 쌓일 먼지와
어차피 생길 얼룩을
걱정하는 일
꽃이 시들기를 염려 말고
하루쯤은 화병을 비워두어도
하루의 절반쯤을 취해 살아도
젊지도 늙지도 않은 너와 내가
우리를 위로한다
내일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 세대의 고생과 아픔은 (IMF 등으로 표상되는) 자주 다뤄지는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세대의 아픔은 그보다도 더 하면서 사실은 그보다도 못하게 표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정신노동을 주로 하는 기획자로서의 저의 삶이 그러한데요. 겉으로 보기엔 편하게 집에 앉아서 씻지도 않고 눈곱도 그대로 붙이고 노트북 앞에 앉아 팔자 좋게 돈을 벌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매일 머릿속으로 숨을 헉헉 몰아쉬며 뛰어다니고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요즘 사람들의 자영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요즘 사람으로 쓰기에는 어느덧 중년으로 향해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자영업의 애환을 썼습니다. 매일 청소하고 매일 밤늦게 일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아지트 같은 술집을 찾고, 미래가 없는 내일을 애써 위로하면서도 그런 내일을 가장 기대하는.
너무 고달프게 표현이 안되어서 그렇지, 약간은 팔자 좋게 미화되어 보여서 그렇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는 호기롭게 어딘가에 투고했는데 선정되지 않아서 공개합니다. 이제는 조금씩 마음을 비우고 그저 좋아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한동안 마음이 힘들어 화병에 꽃을 채워두는 일도 잊고 지낸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쯤 꽃병에 꽃을 갈아 주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를 결심하는, 저의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