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의 계약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욱이 고민 끝에 사인을 하자 만년필이 욱의 손에서 스윽 빠져나와 해주 이름 옆에 사인을 하고 사라진다.
욱은 계약서 한 장을 잠금장치가 있는 서랍에 넣어둔다.
"오늘 오전에 너네 회사 대표님이 찾아와서 투자 제안을 하더라.
재능 있는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영화 제작에 힘을 실어 달라고. 알고 보니 그 작가가 너였더라.
그러니까 내일부터 빡시게 작업해."
"참~나 원고 빨리 내놓으라고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놓고. 미워할 수도 없게 만드네. 그럼 오늘부터라도 밤새야 하는 거 아닌가?"
"쉴 때는 쉬어야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내일부터 9시 출근, 6시 퇴근. OK?"
"네. 알겠습니다."
욱은 노트북을 덮고 해주가 알려준 문을 열고 나간다.
출출한지 옷도 갈아입기 전에 냉장고 문부터 열어보는데 텅텅 비어있을 거 같던 냉장고 안이 식자재들과 음료, 주류들로 가득 차 있다.
"오~ 센스보소~"
욱은 취미가 요리라 능숙하게 된장찌개 거리를 꺼내어 보글보글 끓인 후 저녁을 해결하고 있는데 욱의 핸드폰이 울려 먹던 걸 멈추고 핸드폰을 본다.
화면에 찍힌 [족쇄] 그리고 한숨을 쉬고는 전화를 받는다.
"네. 엄마"
-야, 너 지금 어디냐? 왜 집에 없어? 비번도 바꿨네, 나쁜 새끼
"하...왜 오셨는데요?"
-뭐야? 엄마가 아들새끼 집에 왔는데 이유가 있어야 돼? 누가 지 아빠 아들 아니랄까 봐, 버러지 같은 새끼. 됐고, 돈이나 보내. 너무 적어. 이제부터 200 보내.
"엄마! 나한테 돈 맡겨 놨어? 엄마한테 200 보내고 나면 난 월세도 못내. 알아? 30년 동안 엄마가 나한테 도대체 뭘 해줬다고 이래?
낳아만 놓고 밖으로 싸돌아다니면서 엄마 노릇 한 번, 따뜻한 집밥 한 번 해준 적 없었잖아!"
- 뭐 이 새끼야? 엄마한테 말하는 싸가지 봐, 이거. 내가 너 같은 거 아니었으면 진작에 네 아빠하고 이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았을 건데.
너랑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다 네가 태어나서야. 괜히 널 낳아서는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꼬라지인 거라고! 근데 네가 감히!
그리고 이 집 보증금 빼면 되잖아! 내일까지 보내. 또 이렇게 찾아오게 하지 말고. 어? 알았어?
"보증금 빼면 난 어쩌라고?! 양심이 있으면 다신 찾아오지 마. 돈이고 뭐고 이제 못주니까 알아서 살아! 또 찾아오면 정신 병원 보내버릴 거니까!
전화도 하지 마, 번호 바꿀 거야."
욱은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다시 먹던 밥을 먹으려다가 지난날의 서러움에 왈칵 눈물이 난다.
(오늘만 울게요. 족쇄 같은 엄마를 안 끊어내면 내 미래도 없을 거 같아서요.
30년 살면서 단 하루도 행복했던 기억이 없어요.
5살 때 집 나간 아버지에, 돈 많은 유부남 꼬셔서 희희낙락 사는 엄마에,
중학교 때부터는 공부보다는 먹고살아야 해서 알바 하느라 꿈이었던 외교관도 포기했어요.
어차피 소멸될 삶이라면 하루라도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래서 당신과의 계약이 내심 반가웠네요. 고맙습니다. 저를 살려주셔서...
이런 저에게 손 내밀어 주셔서...)
욱의 속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해주의 귓가에도 맴돌았다.
"엄마 맞아? 쓰레기네."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아서 읽던 책을 협탁에 올려두고 릴렉스 하며 눈을 감는다.
꿈을 꾸듯 해주의 앞에 욱의 엄마가 사는 집이 나타나고 그의 엄마가 그 집 안으로 들어간다.
허름하고 낡은 다가구주택 지하 단칸방.
술에 취한 채 씻지도 않고 그대로 이불 위에 드러누워 골아떨어진다.
"이따위로 사는 게 쪽팔려서 아들한테 그런 거냐? 그러게. 책임지지 못할 거면 낳지를 말던가, 낳았으면 책임을 지던가,
둘 다 자신이 없으면 피임을 하던가 했어야지. 그걸 왜 네 자식 탓을 하니.
네 아들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태어나 보니까 너 같은 게 엄마인걸 어떡하냐.
넌 정신 좀 차려야겠다. 원망은 하지 마.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해주는 욱의 엄마를 오른손으로 목을 조른 채, 들어 올려 바닥으로부터 그녀의 두 발을 떨어뜨린다.
겁에 질린 그녀는 목이 졸려 앓는 소리만 낼뿐이고, 점점 얼굴을 빨개지고 동공이 흔들린다.
"내가 누군지, 왜 네 집에 있는지, 왜 이러는지 존나 궁금한 얼굴이네? 근데 친절하게 알려줄 만큼 내가 자비로운 악마가 아니라서.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려줄게. 네 아들, 장 욱. 그냥 냅둬. 전화도 하지 말고, 찾아가지도 말고, 돈 뜯어내는 건 더더욱.
한 번만 더 그랬다간 그땐 이걸로 안 끝나. 태어나보니 너 따위가 엄마인 것도 불쌍한데 평생을 혼자 아등바등 살면서 너 따위가 하는 폭언만 듣고 자란,
아무 죄 없는 네 아들! 더 괴롭히지 말라고. 알아들어?"
욱의 엄마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얼굴은 점점 보랏빛이 되고서야 그녀를 놓아주는 해주
그러고는 그대로 그녀를 내팽개친 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