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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용감한 자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by 제나랑


<2024년 08월 11일>

AM 10:30

오늘도 어제처럼 스텔라와 부모님은 [ㅈㅅ파크 인터내셔널 골프 센터]에서 공을 치는 중이다.

어제와는 달리, 드라이빙 레인지는 건너뛰고 바로 필드로 나갔고, 18홀의 정식 코스를 선택했다.

"맘, 대디랑 비행기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나? 어땠어?"

"응~ 사실 그날 오프였는데 후배 하나가 엄마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바꿔 달라고 해서 바꾼 거였거든."

"그랬어? 그건 몰랐네? 그럼 그때 자기가 스케줄 안 바꿨으면 나랑 못 만났겠네?"

"그치~ 그럼 우리 딸내미도 없었겠지~"

"그 후배분이 은인이었네~"

"근데 엄마 수술한다는 거 거짓말이었더라. 그냥 남친이랑 기념일이었댄다~"

"뭐야, 은인이라는 말은 취소."

"그래도 그 거짓말이 고맙기는 한데, 난?"

"아무튼, 그래서 그날 비행을 하게 됐는데 웬 덩치 큰 남자가 타더라? 그냥 '와 체격 좋다.' 이런 생각밖에 없었고 다른 날처럼 내 일 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호출해서 냅킨을 가져다 달래. 그래서 내가 가져다 줬는데 또 호출하는 거야. 이번엔 다른 동료가 가니까 잘못 눌렀다고 하더래.


그리고는 또 호출하더라."

"와, 그 남자 진상이었구나~~"

"아니, 진상이 아니라~"

"ㅎㅎ그래서 이번엔 내가 갔지. 그랬더니 볼펜을 달래. 갔다 줬지. 그 뒤로는 호출 안 하길래. 이제 좀 잠잠 한가 싶었는데 기내식 서빙할 때


냅킨을 내 상의 유니폼 앞주머니에 쓱 넣더라? 그래서 진짜 미친ㄴ인 줄 알았어, 진짜~"

"겉으로 봐서는 어떤 미친 사람이 승무원 유니폼 주머니에 쓰레기 넣는 건 줄 알 거 아냐~ㅋㅋㅋ"

"아니~ 그걸 그렇게 왜곡하면 안 돼~"

"ㅎㅎ어이가 없어서 갤리로 들어갔을 때 버리려고 꺼내 보니까 무슨 글씨가 써 있는 거야~ 그래서 펴 봤더니 그 조그마한 냅킨을 잘 써지지도 않는데


깨알같이 가득 채워서 편지를 썼더라. 편지를 쓸 거면 엽서나 뭐, 그런 걸 달라고 하지~ㅎㅎ"

"요청하면 엽서도 주는지 몰랐지~ㅎ"

"ㅋ뭐라고 써 있었는데?"

"그것까지 말해? 괜찮겠어?"

"아니. 부끄러."

"ㅋㅋ딸내미한테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ㅋ 뭔데~? 얘기해줘~"

"ㅎㅎ그냥 연애편지였지, 뭐~"

그리고는 지갑을 꺼내 사진 한 잔을 꺼내어 스텔라에게 건넨다.

사진은 다름 아닌, 그 연애편지를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 찍어둔 사진이었다.

Dear. You

(영어)

이름이 뭔지 묻고 싶지만, 이름을 묻는 것보다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이 비행기에 올라 처음 그대를 본 순간부터 다른 것에는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대는 내 마음을 흔들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작은 냅킨 하나로 내 마음을 전부 전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그대가 알아줬으면 해요. 그대가 얼마나 아름

다운 사람인지, 그대의 눈, 그대의 미소, 그대가 웃을 때

양 볼에 깊게 패인 보조개, 그리고 그대의 성품까지,

외면뿐만이 아니라 내면까지도 아름다운 사람이란 걸요.

물론, 그대의 내면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더욱 알아가고

싶습니다. 그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연락 기다릴게요.

P.S - 5JG@mail.com

"그걸 아직도 갖고 있었어?"

"이걸 어떻게 버려~ 엽서에 적어 줬으면 그 엽서 그대로 보관했을 텐데 냅킨이라서 막 너덜너덜해지는 거야.


그래서 더 찢어지기 전에 이렇게 사진 찍어서 갖고 있었지~"

"어떻게 여보야는 42년이 지나도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사랑스러워?"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맞추자, 스텔라는 짧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린다.

"저기요, 여기요? 여기 공 치러 온 사람들 많거등요? 그냥 근처에 방 잡아 드릴까요?"

스텔라의 말에 웃으며 그제야 입술을 떼는 두 사람

"그래서~ 그래서 맘, 그 냅킨 받고 메일 보냈어?"

"보냈으니까 우리 딸내미가 여기 있지~"

"근데, 그게 한 달 만이었지~ 기다리는 사람은 그 한 달 동안 속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미친ㄴ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그랬지~ㅎㅎ 근데 그 냅킨에 적힌 깨알 같은 편지를 계속 보게 되더라~ 나중엔 아주 달달 외워서 안 보고도 생각날 정도였어~


그래서 메일 보냈지, 한 달 만에~ 이름이랑 나이랑 그런 거 적어서~ 답장은 다음 날 바로 왔어. 이름은 뭐고 나이는 몇 살이고 어느 나라 사람이고,


뭐하는 사람 인지까지~ 4살이나 연하더라~ 난 오빤 줄~"

"오빠라고 불러~ㅎㅎ"

"어허~ 누나한테 까분다?ㅎㅎ"

"잘못했어요, 누나~ㅎㅎ"

"우리 딸내미는? 누구 없어?"

'본가에 온 뒤로 가끔 메이든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메이든과 함께 제주도에서 했던 여행에 대한 기억인 건지,

메이든이 보고 싶은 그리움인 건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근데...엄마의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메이든이었고,

그제야 깨달았다…메이든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 건지는 몰라도,

아…나..메이든이 보고 싶었구나…

막혀 있던 벽이 와르르 무너지면 건너편에 있던 뭘지 모를 감정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은..

그럼 기분이었다.'

"있었는데 잘 모르겠어~"

"뭘 모르겠는데?"

"지금 내가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게 그 사람이 보고 싶은 건지, 그 사람이랑 함께했던 여행이 너무 좋은 기억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였기 때문에 좋았던 건지…"

"스텔라의 마음을 모르겠어? 아님, 확신이 없는 거야?"

"둘 다인 것 같기도 하고...나도 30대였으면 이런 고민도 안 했을 거 같아. 이젠 누구를 만나서 맞춰가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계속 반복하다가 헤어지고 상처받고..이런 과정이 너무 힘들어, 이제...그리고 이미 혼자가 편해져 버려서..."

스텔라의 말에 켈리와 재규는 그녀를 양쪽에서 따뜻하게 안아 주었고, 두 사람 모두 그녀를 토닥였다.

"으..답답해."

그녀의 말에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는 두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사람이 생각난 거라면 그게 스텔라의 마음 아닐까? 아직은 그래도 스텔라가 걱정하는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해도 괜찮아~ 사랑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 엄마가 아빠를 20대에 만났기 때문에 사랑하고 결혼을 한 게 아니라 엄마가 아빠를 만나서

사랑했던 나이가 20대였을 뿐이고 다른 사람보다 아빠를 더 일찍 만난 게 다행인 거지. 다른 사람을 만나다 30대에, 40대에 아빠를 더 늦게 만났어도


우린 이렇게 결혼했을 거 같은데? 만나기만 한다면 그게 언제든 그때가 그 사람과 너의 타이밍인 거야~ 물론, 만나지 못한다면 인연이 아닌 거겠지만..."

"누구든 용기만 낸다면,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도 사라질 거야~"

"나중에 소개시켜줘~ 누군지 너무 궁금하다~"

"나~중에~ 내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가 인연이라면 만날 거고, 만나게 되면. 그때..."

"근데 연락처도 모르는 거야?"

"아니, 연락처 아는데...내가 먼저 용기를 내도 되는 걸까, 그 사람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용기 낼 필요가 없는 건 아닐까..


그냥 제주도에 있는 동안 함께했던 여행 메이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라서 서울에 돌아가고 난 뒤, 벌써 잊은 건 아닐까..뭐, 이런저런 생각이 드네~"

"일단, 그냥 해봐~ 안 받으면 할 수 없고~ 받으면 인연을 이어갈 여지가 있는 거고~"

PM 12:00

점심시간이 돼서 잠시 점심 먹으러 골프장을 나온 세 사람은 시카고 피자를 먹기 위해 근처 피자집으로 이동했고,


각자 7인치 피자에 토핑을 다르게 해서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골프장으로 돌아와 남은 홀을 돌며 공을 치는 세 사람

스텔라는 자신의 차례가 되기 전, 메이든에게 톡을 보낸다.

>>메이든

메이든, 잘 지내?

혹시 줌이나 영상 통화 가능해?

다시 골프 가방에 핸드폰을 넣어두고, 공 치러 가는 스텔라

PM 03:00

18홀을 다 돌고 나서 본가로 돌아온 세 사람은 각자 씻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스텔라는 핸드폰을 찾지만, 보이지 않았고, 골프 가방에 그대로 넣어두고 잊은 채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고 다시 차고지로 향한다.

차고지에 있던 수납장 중 작은 서랍 속에서 여분의 차 키를 꺼내 차 문을 여는 스텔라

골프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고는 다시 3층 방으로 올라간다.

계단을 오르며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메이든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다.

실망감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머리를 마저 말리고는 노트북 앞에 앉는다.

와인을 좋아하는 켈리가 와이너리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갈만한 와이너리를 찾아보는 중이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똑)

"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재규였고, 그는 스텔라의 1인용 소파에 앉아 물끄러미 그녀의 옆 모습을 바라본다.

"딸~ 어렸을 때도, 쑥쑥 크는 동안에도, 힘들 때도 옆에 없어서 미안해."

그녀는 재규를 바라보더니 눈을 흘긴다.

"그 말 하지 말랬지. 난 아버지가 내 아빠여서 좋고, 외교관인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그 일 때문인 거니까 다 이해한다니까?


나 애기 때부터 외로움 잘 안 탔잖아~ 혼자서도 잘 놀고 엄마, 아버지 사랑 듬뿍 받아서 잘 컸고 이렇게 매년 보잖아. 작년엔 못 봤지만..."

"알았어, 알았어~ 괜히 또 그 말 해서 미안~ 아빠도 스텔라가 내 딸이어서 너무 좋고 우리 딸내미가 하고 있는 일, 너무 자랑스러워~"

"그니까 쓸데없는 말, 생각, 1도 하지 말고 건강하기만 하셔~ 40년은 더 효도 해야 되니까~"

"아이구~ 건강은 나만 챙기나? 이제 딸도 챙겨야 할 나이야~ 물론, 우리 눈엔 아직 애기 같지만~ㅎㅎ"

"녜녜~ 근데 애기라고 하기엔 마흔이 넘었습니다만~"

"80세 노인도 100세 부모 눈엔 애기라고~ㅎㅎ"

"예전엔 그 말이 전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젠 좀 알 거 같기도 해~ 배 아파 낳아서 누워서 먹여주는 대로 먹고 할 줄 아는 건 우는 것밖에 못할 때부터


힘들게 키워서 10대, 20대, 30대, 40대를 쭉 지켜봤으니까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 그만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한 거 같구~"

"다 컸네, 우리 딸~"

"다 큰지는 꽤 됐구요~ㅋㅋ"

"ㅎㅎ 내려가자~ 저녁 다 됐을 거야~"

"네~"

스텔라와 재규는 함께 1층으로 내려갔고, 켈리가 다이닝 룸에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라자냐와 오븐 통닭, 샤브샤브 전골, 그리고 로메인 랜치 샐러드였고,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접시에 조금씩 덜어서 식사를 시작했다.

"내일 브런치는 내가 할까?"

"대디 표 토스트 먹고 싶다~"

"그래? 그럼 내일 브런치는 토스트로~"

"아, 와이너리 찾아봤는데 가까운 데로 두 군데, 먼 데로 한 군데 있는데 어디가 좋아?"

"다 가면 안 되나? 시간도 많은데~"

"얼마나 먼데?"

"비행기로 4시간 40분? 나파 밸리에 있는 거~ 그럼 루이빌처럼 숙소 잡고 며칠 있다 올까?"

"그래~ 그것도 좋겠다~"

"두 군데는 어딘데?"

"하나는 갈레나에 있고 하나는 로젤에 있대~"

"오~ 둘 다 일리노이 안에 있구나~ 가깝네~ 그래, 세 군데 다 가자~"

"누가 보면 술에 환장한 사람들인 줄 알겠네~ㅎㅎ"

"왜~ 재밌잖아~ㅋㅋ 이번에도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ㅎㅎ"

함께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자리를 옮겼으며,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늦은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돼서야 방으로 올라온 스텔라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고, 그녀가 핸드폰을 확인한다.

예상과는 달리, 메이든이 아닌 환이의 안부 문자였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답장을 보낸다.

>>용산 호랭이

/부모님은 잘 계시지?/

-잘 계시지~ 여전하셔~ 정정하시고 사랑이 넘치시고~

/ㅎㅎ그치~ 너희 부모님은 늘 사랑이 넘치시지~ 옆에 있을 때 건강 좀 잘 챙겨 드려~/

-야, 골프 할 때 보니까 앞으로 30년은 거뜬하겠더라~ 친구분들이랑은 일주일에 세 번씩 27홀 코스로 치러 다니신단다~


골프채도 얼마나 많이 쳤으면 낡았어~ 한국 가기 전에 사드리고 갈라구~

/그래? 다행이네~ 우리 엄마는 맨날 하는 말이 삭신이 쑤시네, 니들 뼈 빠지게 키우느라 이렇다, 뭐, 이런 소리만 하던데~ 그러면서 등산은 또 잘 다녀~/

-산이 그렇게 좋다~ 영양제 좀 잘 챙겨 드려~ 건강 검진도 6개월에 한 번씩 해드리고~ 부모님 나이 때는 우리보다 더 자주 해야 된댔어~

/알았다~ 어머니 생신 이후에 올 거지?/

-응~ 당연하지~ 작년에 못 온 게 얼마나 마음에 걸리던지, 2년 치 몰아서 시간 보내다가 가야지~

/그래~ 귀국하면 연락해~/

-알았다~

환이와의 통화가 끝나고 스텔라는 마스크팩과 반신욕을 하며 잘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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