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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요람에서 배운 것은 무덤까지 간다

by 제나랑


PM 04:00

아침 겸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스텔라와 그녀의 부모님은 [다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를 나와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았고,


차로 10분 거리에 있어, ㅇㅂ 택시를 불렀다.


생각보다 빨리 잡힌 택시가 바로 도착했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나파 밸리의 와인 메이커들의 단골집인데다, 주변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코스처럼 왔다 간다는 곳으로, 햄버거가 메인 메뉴였고 종류도 많았으며,


패티 굽기 정도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세 사람이 식당 내부로 들어서자, 직원이 이들을 맞이하며, 안에서 먹을 건지, 밖에서 먹을 건지부터 물었고,


탁 트인 곳에서 먹고 싶은 마음에 아웃사이드로 요청했다.

건물에서 몇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원목으로 되어 있는 개방 된 공간에 야외 테이블이 있었으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가장자리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직원이 가져다준 음식 메뉴판과 와인 리스트가 종이로 되어 있어서 인사이트 메뉴판도 종이인지, 아웃사이드 메뉴판만 종이인지 의아해 갸우뚱하며


먹을 음식을 각자 골랐다.

에피타이저로는 어니언 링, 사이드 메뉴는 스모크 치킨 찹 샐러드, 그리고 그릴 연어 BLT, 몽골리안 폭찹과 로드레 에스테이트 브뤼 와인 한 병을 곁들여 먹었고,


디저트로는 레몬 머랭 타르트를 주문했는데, 음식도 맛있었지만, 타르트만 먹으러 또 오고 싶은 정도였다.

내일은 세 군데의 와이너리는 방문하는 투어를 예약한 상태라 일찍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2024년 08월 15일>

AM 10:20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나파 밸리 와이너리 투어는 그룹, 프라이빗 투어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개별 자유여행으로도 가능한데,


다나 이스테이트는 개별 자유여행으로 갔으니, 나파 밸리는 그룹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투어 픽업 차량이 세 사람이 묵고 있는 호텔 입구 앞까지


온다고 해서 미리 1층으로 내려와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고, 오기로 한 시간에 바로 도착해 픽업 차량에 탑승한다.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QR코드가 찍힌 바우처를 받게 되며, 투어 담당 가이드에게 QR코드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데, 픽업 차량 안엔 다른 예약자들도


함께 타고 있었고, 10분쯤 달려서 첫 번째 와이너리인 [조셉 펠프스 빈야드] 입구에 도착해 가이드와 예약자들이 하나둘씩 내려 마중 나온 직원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가이드는 1시간 40분쯤 소요될 거라고 안내했다.

[조셉 펠프스 빈야드]는 세계적인 브랜드인 ㄹㅇ비통이 소유하고 있는 와이너리로, 1973년 건설 경영자이자 사업가인 조셉 펠프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1974년 처음 생산된 레드 보르도 품종, 나파 밸리 브랜딩 '인시그니아'로 알려지기도 했고, 2023년에 50주년을 맞이하며 9월에는 한국에서도 정식 런칭


되기도 했다.

또한, 1인당 와인 시음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데, 테라스에서 빈야드를 바라보며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나파에서 가장 아름다운 와이너리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시음 와인과는 별도로 들어가자마자, 웰컴 와인을 주는데, 스파클링 와인이어서 달고 맛있었고, 포도밭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마시거나


야외 테라스에서 마셔도 되는데,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좋았기에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빈야드를 바라보며 마시기로 한다.

[조셉 펠프스 빈야드]에서 시음하게 될 와인 리스트가 가져다주는데, 각 예약자마다 이름이 적혀 있어, 특별한 느낌이 들었으며,


총 5잔의 와인을 시음할 예정이라 각 와인의 이름과 소개도 함께 적혀 있다.

테이블마다 담당 서버가 있어, 돌아다닐 필요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5잔의 와인을 순서대로 가져다준다.

와이너리의 역사, 각 와인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와인도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첫 번째 와인은 2020 샤르도네였는데, 레드 와인이 아닌 화이트 와인으로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었고, 두 번째 와인은 2021 피노 누아였는데,


식당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와인답게 라이트한 와인이었으며, 다 마신 잔을 따로 교체해주진 않고 헹굴 수 있는 바스켓이 필요하냐는 직원의 말에


잔을 교체해줄 수 있냐고 정중히 요청하니, 바로 교체해 줬다.

이어서 세 번째는 2021 뱅 뒤 미스트랄, 네 번째는 2018년 까르베 소비뇽,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시그니처 와인인 2019 인시그니아였는데,


품종별 함량은 빈티지마다 다르게 구성된다고 하며, 크렘 드 카시스, 말린 꽃, 초콜릿, 라벤더, 토바코, 허브 잎의 매혹적인 향과 풀 바디감의 풍성함,


그리고 완벽한 레이어의 텍스처가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와인 시음이 끝나고, 구매 가능한 와인 리스트도 주셨는데, 인시그니아 빈티지를 사고 싶었지만, 400불이 넘어서 레드 와인은 다음 와이너리에서 사기로 하고,


전적으로 켈리의 말에 따라 화이트 와인인 샤르도네를 구매 하고 나자, 슬슬 배가 고파졌다.

PM 12:15

점심시간이 되어 가이드는 두 가지 옵션을 제시했는데, 하나는 세인트 헬레나 가정식 레스토랑 하나,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 둘, 이탈리아 요리 레스토랑 하나 중


고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파에서 가장 오래된 마켓 '오크빌 마켓'에서 샌드위치나 간단한 음식을 구입한 후,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것이었다.

세인트 헬레나 가정식이 궁금했던 켈리와 스텔라의 선택에 따라 가정식 레스토랑인 [팜스테드]에서 점심을 먹었고, 예약자 중 한 신혼부부와 할아버지 한 분도


같은 곳을 선택해 함께 했다.

PM 01:30

식사가 끝나고, 가이드를 따라 투어 픽업 차량에 탑승해 두 번째로 방문한 와이너리는 [오퍼스 원]이었다.

오크빌에 위치한 [오퍼스 원]은 1982년까지는 '나바 메독'이라고 불렸으며, 보르도 스타일 블랜딩으로, 와이너리 업계의 거장인 로버트 몬다비와


필립 로스차일드가 신세계와 구세계의 와인을 합쳐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협업하면서 설립된 와이너리로, 최고의 까비넷 소비뇽을


시음할 수 있는데, 역시나 1인당 와인 시음 비용을 지불하면 5잔 시음이 가능했고, 오크통 저장소는 시음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 한해서 방문할 수 있었다.

1시간 10분이 소요된 [오퍼스 원]은 베이지 컬러의 건물 외관과 오렌지 컬러의 대문이 너무 예뻤다.

외관만큼이나 내부 공간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는데, 마치 성이나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담당 서버가 배정되어 있어,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안내해 주는데, 기본 테이스팅 코스는 자리에 이미 시음할 와인들을 예약자별로


미리 따라두었고, 코스터에 몇 년 산, 무슨 와인인지 적혀 있어서 조금씩 비교하며 마실 수 있었다.

한눈에 빈티지 와인을 맛보다 보니, 2018년 산이 제일 마음에 들어서 두 병이나 구매했다.

PM 03:00

바로 다음 와이너리로 이동하는데, 어느덧 마지막 와이너리에 도착했고, 오늘 방문한 와이너리 중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하는 와이너리인


[스택스 립] 입구 앞에서 내려 가이드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1976년 파리의 심판 레드와인에서 우승을 하기도 한 [스택스 립]은 나파 밸리에서도 역사가 깊고 특별한 와이너리로, 1893년에 처음 설립되어


나파 밸리의 와인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건축물과 포도밭은 그 시대의 전동과 현대적인 와이너리 문화를 모두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방문객은 고풍스러운 와이너리의 메인 하우스를 둘러보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와인의 향과 역사를 느낄 수 있다.

파리의 심판은 영국 출신의 와인 상인 스티븐 스퍼기어가 주최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그가 운영하던 파리의 와인 상점에서 이루어졌으며,


당시에는 프랑스 와인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고, 프랑스 와인이 와인계의 정점으로 덜 알려져,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스티븐은 캘리포니아 와인에 흥미를 느꼈고, 이를 프랑스의 최고 와인들과 비교해 보자는 취지에서 파리의 심판을 기획했으며,


그는 프랑스의 저명한 와인 전문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초대해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의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형식으로 심사하게 되었다.


파리의 심판 테이스팅 결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캘리포니아 와인이 화이트와 레드 부분 모두 우승을 하였으며, 화이트 부문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샤또 몬텔레나의 1973년산 샤르도네가 1위를 차지했고, 레드 부문에서는 [스택스 립] 와인 셀러스의 1973년산 카베르네 소비뇽이 프랑스의 최고 와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스택스 립]의 전통과 자연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제공되지만, 간략한 설명을 통해 역사와 그들의 철학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으며,


넓게 펼쳐진 포도밭에서 직접 재배된 다양함 품종의 포도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와인으로 거듭나는지에 대한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1970년에 처음 심어진 [스택스 립]의 대표 포도밭인 S.L.V는 화산성 토양으로, 미네랄이 풍부하여 산성도가 높아서 집중도와 복합 미를 가진 포도가


자라게 되며, 이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깊고 풍부한 타닌, 복합적인 구조와 풍부한 검은 과일 향이 특징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테이스팅에 집중하였기에 와인 숙성에 사용되는 오크통과 와이너리의 현대적인 와인 제조 시설 등을


견학하는 기회는 없었다는 점이었다.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와인 테이스팅은 가장 사랑받는 시그니처 와인들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풍부한 과일 향과 타닌,


그리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맛은 와인 애호가인 켈리뿐만 아니라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는 맛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라 포도밭을 산책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수목원을 걷는 기분이었다.

PM 05:30

점심시간까지 포함해 7시간 동안 세 군데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던 나파 밸리 와이너리 투어가 끝이 났고, 가이드는 세 사람을 픽업했던 호텔에 내려주겠다고


했지만, 스텔라가 예약한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세 사람은 정중히 사양했으며, 택시를 불러 30분을 이동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칼리스토가에 위치하고 있는 미슐랭 1스타 [솔ㅂ]

입구 앞에 내린 세 사람은 정면에 보이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 오른쪽으로는 멋진 야외 테이블이 보였고, 실내도 멋지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주저 없이 야외 테이블에 앉은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초록빛 나뭇잎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메뉴판을 보며 자주 귓볼을 만지는 스텔라를 본 켈리와 재규는 어릴 때도 습관처럼 귓볼을 만지던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떠올라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왜?"

"마흔이 넘었어도 여전히 귓볼 만지네~ 애기 때부터 그러더만~"

"아, 또 귀 만졌어, 나? ㅋㅋ 뭐, 그 버릇 어디 가나~ㅋㅋ"

웃음을 터뜨리며 메뉴를 고르던 세 사람은 두 명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라는 럭키 피크와 등갈비, 그리고 로제 와인 한 병을 주문했는데,


럭키 피크는 오븐에서 천천히 익힌 돼지고기가 르크루제 냄비에 담겨 나오는 요리로, 같이 나오는 로메인과 크레페 위에 고리와 소스를 올려 먹는 것이었으며,


이 요리를 먹기 위해 [솔ㅂ]에 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라고 하고, 등갈비에 샐러드가 함께 나오기 때문에 따로 샐러드를 주문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저녁 시간이 되자, 야외 테이블은 빈자리 없이 만석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까지는 택시를 타고 20분이 걸려서 도착했으며, 켈리는 와이너리에서 사 온 와인들을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어떤 음식과 마실지,


언제 마실지, 벌써 설레는 표정으로 이야기 하는 모습에, 스텔라는 와이너리 투어하러 나파 밸리까지 부모님과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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