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1화

사람은 단 한 번 죽을 뿐이다

by 제나랑


<2024년 09월 15일>

PM 01:40

스텔라는 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은 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재규의 차량을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켈리의 생일이 다가오기도 하고, 시카고는 그녀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기에,


이렇게 본가에 와있다 보면 이따금씩 외조부모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외조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녀와 켈리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그리움이 스며들었고, 그곳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가슴 깊이 묵직한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곳은 본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노스 클락에 있는 [그레이스 랜드 공원묘지]이며, 세 사람은 입구 주변에 차량을 주차한 후,


수많은 묘비가 줄지어 세워져 있는 가운데 외조부모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켈리의 부모이자 스텔라의 외조부모 묘지 앞에 선 세 사람

숙연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묵념을 하는데, 스텔라는 외조부모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할머니와의 즐거운 대화, 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가득했던 날들이 하나하나 그녀의 마음을 감쌌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제는 조금씩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 어린 시절,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몇 장면이 있다.

흔들 벤치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그녀의 품을 비집고 들어가 안겨 있던 스텔라를 느꼈던 그녀의 따듯한 온기와 향기,


그리고 그녀의 웃음소리와 스텔라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고, 할아버지와 함께 공원에서 따뜻한 그의 손을 잡고 산책하며


길가에 핀 꽃들을 바라보던 스텔라의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 꽃의 이름을 알려주시던 목소리, 다른 빌리지에 있는 외조부모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기면 번쩍 들어 올려 안아주시던 기억들이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게 했으며, 어느새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이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외조부모의 사랑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고,

이곳에서 그들의 존재를 느끼고 싶었던 그녀는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급히 닦아냈다.

결국 슬픔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의 기억을 소중히 여기며, 그리움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고,


켈리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외조부모와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들이 남긴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져


고요한 공원묘지의 풍경 속에서 그리움과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안고 공원묘지를 나왔다.

다시 본가로 돌아와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거실 쪽 벽면에 켈리가 요청했던 스텔라의 한담 해변 그림이 걸려 있었고,


오늘처럼 숙연해진 세 사람의 분위기, 밖에서 겪은 어떤 일로 인해 가라앉는 기분을 정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2024년 09월 26일>

PM 12:45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켈리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2층으로 올라가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1층 주방은 평소 켈리가 요리할 때와는 달리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내일이면 스텔라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제 부모님과 또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엄마에게 특별한 생일상을 준비하면서 잠시나마 잊고 싶었고, 그녀는 재규와 함께 켈리의 생일상을 정성스럽게 차리고 있다.

가장 먼저 만들기 시작한 건 역시나 소고기미역국이었으며, 미역을 불리는 동안, 등갈비찜을 만들기 위해 미리 양념에 재워둔 등갈비를 꺼내 큰 냄비에 넣었고,


켈리가 얼마나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떠올리며 보쌈, 무쌈 불고기 말이, 잡채도 함께 준비했다.

그뿐만 아니라 외할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캘리포니아롤, 로스트비프, 마카로니 치즈, 버팔로윙, 과콰몰리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레시피를 적어둔 수첩을 켈리에게 전해줬고, 켈리는 그 수첩을 애지중지 아끼며 요리를 연구하면서도 자주 뒤적여 보곤 하는데,


스텔라는 엄마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그 수첩을 가져왔다.

그녀와 재규는 그 레시피 수첩을 들여다보면서 요리했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켈리를 위해 디저트는 빠질 수 없었으며, 두 사람이 직접 만든 아몬드 파이, 녹차 케이크, 그리고 제철 과일 모둠까지 전날 미리 준비해 두었다.

PM 05:00

모든 요리가 완성된 후, 스텔라는 2층 티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있는 켈리를 데리고 1층으로 내려왔다.

녹차 케이크에 촛불을 꽂고 불을 붙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생일을 축하했고, 켈리는 두 사람이 차려놓은 생일상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켈리는 이 특별한 생일상이 가족의 사랑이 가득 담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선물이라고 느꼈고, 내일이 되면 한국으로 돌아갈 스텔라와 또다시 떨어져 아쉽지만,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마음속에 남게 될 것이고 너무 행복하다는 말로 그 마음을 스텔라에게 전달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

"내일 로드니도 같이 한국에 들어간다고?"

"그러기로 했었는데, 아무래도 여기를 정리하고 가야 할 거 같다고 시간을 좀 달래~ 그래서 마무리하는 대로 다음 달이나 늦어도 올해 안으로 한국으로 가겠대~"

"아~ 그치, 아무래도 엄마 장례 치르고 나서 정리할 게 많을 텐데 그동안 못했으니까~"

"아휴~ 두 달이 너무 빨리 갔다~ 1년을 또 어떻게 기다리나~"

"그러게~ 꼭~ 행복한 시간은 빨리 지나가~"

"전화 자주 해~"

"ㅋㅋ벌써 왜 작별 인사해~ㅋㅋ 나 내일 말고 오늘 가까?ㅋㅋ"

"노~! 아니~ 내일 가는 것도 서운한데~"

"은퇴하면 평생 모실게~ 쫌만 기다려~"

"언제 은퇴할 건데?"

"몰라~ㅋㅋ"

그렇게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하루가 지나가고, 아쉬운 마음에 스텔라의 방 침대에서 부모님과 셋이서 밤새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2024년 09월 27일>

PM 05:00

스텔라가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로드니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곧 한국에서 보기로 약속까지 한 뒤, 재규의 차량 트렁크에 스텔라의 캐리어를 싣고,


켈리도 공항까지 배웅하기 위해 함께 차에 탑승했으며, 세 사람은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공항 가는 길이 더 길었으면 했지만, 야속하게도 더 짧게 느껴졌다.

PM 06:00

공항에 도착해서도 매년 이렇게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지만, 여전히 아쉽고 보내기 싫은 마음에 서운한 마음까지 들어 괜히 울컥하기도 한 켈리와 재규

어느덧 탑승 게이트 앞에서 두 사람과 진짜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켈리와 재규는 번갈아 가며 스텔라를 두 팔 가득 꼭 안고는


진한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손을 놓지 못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그녀 또한,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비행기에 올랐고, 그녀를 태운 AS597 여객기는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1시간 30분 정도 대기한 후, 인천행 OZ211 인천행에 탑승 했으며, 인천에는 새벽 5시 30분이 되어서야 착륙했다.

<2024년 09월 28일>

AM 05:50

스텔라는 피곤함을 이끌고 비행기에서 내렸고, 짐 찾는 곳에서 캐리어를 찾아 입국장으로 나간다.

각자의 지인들을 환영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입국장 앞은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고, 이로 인해 마중 나온 환이가 정면으로 바로 보였다.

"뭐야~ 어떻게 왔어~? 왜 여깄어?"

"마중 나왔지~"

"고모가 우리 팀 직원 보낸다고 했는데? 그래서 난 도운이가 올 줄 알았더니~"

"전화해서 내가 가겠다고 했지~ 이 새벽에 그 직원은 무슨 죄야~"

"참~나~"

스텔라는 연락도 없이 서프라이즈로 마중까지 나와준 환이가 고맙지만,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고, 환이는 웃으며 그녀의 캐리어를 대신 끌어준다.

환이의 차량을 세워둔 주차장으로 나가기 위해 공항을 빠져나가려는데, 스텔라가 누군가를 보고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고,


그 사람도 그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메이든?"

"작가님?"

반가운 마음에 스텔라에게 다가가는 메이든

반면에, 스텔라는 반가운 마음과 두 달간 연락이 없던 그였기 때문에 조금은 어색한 마음이 공존했다.

"오랜만이네요~ 환이 형님도 잘 지내셨죠?"

"아, 응~ 나야, 뭐~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가는 거야? 오는 거야?"

"아, 오는 거예요~ 한 달 동안 스페인 가우디 투어 갔다가 오늘 온 건데 어떻게 이렇게 만나죠?"

"결국 갔구나~ 가우디 투어 좋지~"

"네~ 너무 좋았어요~ 작가님은 어디 다녀오세요?"

"아..난 미국 본가에..."

"아, 그렇구나~ 혹시 시간 되시면 아침 같이 드실래요?"

환이는 긍정적인 반응을 하며 스텔라를 보지만, 그녀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나는 기내식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배가 안 고프네...회포는 우리 나중에 풀자. 많이 피곤해서..."

"아…네.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래..."

스텔라는 어리둥절한 환이를 끌고 공항 주차장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메이든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환이는 무슨 상황인지 궁금했지만, 그의 차량 트렁크에 그녀의 캐리어를 싣고, 차량에 탑승해 그녀의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차마 물어보지 못했으며,


그녀는 줄곧 착잡한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봤다.

장시간 비행을 한 후라서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기대어 졸다가 선잠이 들었고, 환이는 그녀의 고개가 어깨 위로 떨굴 때마다 고개를 바로 하며


뒤로 기댈 수 있게 해주었으며, 그 사이,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환이는 그녀의 캐리어를 그녀의 집 안까지 들어다 주고는 집을 나섰고, 그녀는 환이가 나가는 줄도 모르고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스텔라의 꿈속]

안개가 자욱한 숲속을 걷던 스텔라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두려움이 밀려오지만, 이 숲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걸었고,


그러다 조금 떨어진 곳에 누군가가 서 있는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려 조금 더 빠르게 걸어보지만,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이자, 그 사람이 메이든 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가려 하지만,


도저히 가까워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텐데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 대답하기는커녕,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뒤돌아서 걸어가지도 않았다.

계속 걷고 또 걸어도 안개가 걷히지도 않고, 숲속을 빠져나올 수도, 메이든이 가까워지지도 않자, 결국 포기 하고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서 있던 스텔라는


한숨을 깊게 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잠시 뒤, 눈을 뜨자, 그녀의 앞에 메이든이 서 있었고, 안개가 걷힌 초록빛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이 눈앞에 펼쳐졌으며,


메이든은 그런 그녀의 두 볼을 두 손으로 살며시 감쌌다.

그의 따뜻한 손의 온기가 느껴지고 그의 미소도 너무나도 따뜻했다.

묻고 싶었던 말이 많아 입을 떼며 소리를 내보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그는 마치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를 두 팔 안에 가두고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의 심장 소리가 점점 커지는 느낌이었고, 그의 몸도 미세하게 떨려왔다.

그때, 갑자기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이 눈앞에 영화 촬영 현장이 펼쳐지더니, 엄 감독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 했고,


스텝들도 그녀를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며 반겼으며, 산 정상과 천문대, 그리고 밤하늘을 가득 채운 은하수가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수를 놓은 듯한 밤하늘을 계속 보다가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스텔라는 잠에서 깼고,


소파에 그대로 잠이 드는 바람에 온몸이 뻐근했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