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악마의 과거 그리고 환생

by 제나랑

-조선 전기 제11대 국왕이 중종이었던 시절-


중종 이역과 부인이자 왕후였던 신채경은 서로를 향한 애틋함에 궁 안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중종이 침전에서 책을 읽다가 채경의 침전으로 향하기 전 종종 밤 산책을 하곤 했는데 경희루에서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침전에 드는 것이 두 사람의 일과였다.


이 날도 어김없이 채경은 밤 산책을 하며 걷다가 경회루에 다다랐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중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경회루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바위 턱에 발이 걸려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채경이 경회루에 빠졌고,

마침 경회루 쪽으로 걸어오던 중종이 채경을 발견하고 그 즉시 경회루에 뛰어들어 채경을 구했다.


이 날 이후 두 사람의 애정은 더욱 끈끈해졌으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채경은 역적의 핵심 인물인 신수근의 딸이며, 연산군의 정실인 폐비 신 씨의 조카라는 이유로 반정 세력으로부터 폐위를 요구받았고,

즉위 단 7일 만에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녀는 고모인 폐비 신 씨가 머물고 있는 사가로 거처를 옮겼고 이후 두 사람은 중종의 임종 직전,

단 하루 만나기 전까지 떨어져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내야 했다.


중종은 종종 경회루에 올라 채경이 거처하고 있던 사가를 바라보는 일이 많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채경도 이역이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채경이 자주 입던 붉은 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도록 펼쳐 놓았다.


채경은 향후 71세에 나이로 폐비의 신분으로 죽음을 맞이하였고 사후 182년이 지난 1739년이 돼서야 다시 왕후로 복위되면서 단경왕후로 추복 되었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 채경이 임종 이후 사후 세계로 소환되었다.

저승사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신'의 앞이었다.


"참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노라."


'신'의 한마디에 궁에서 쫓겨날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채경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신'은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대, 소원이 있다면 말하라."


"그전에 질문이 하나 있사옵니다."


"말하라."


"저승사자가 되고 싶습니다."


"저승사자 말고 다른 건 어떠냐?"


그 순간 채경의 모습은 채경의 왕후 재위 시절의 얼굴, 그리고 위아래 검은 한복으로 환복 하였다.

이후 저승사자에 의해 차원의 경계선인 공간으로 소환되었다.


"여긴..."


"지금부터 당신이 다시 이승으로 내려가하게 될 임무를 보여주겠다."


꿈을 꾸는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간절하고 나약한 영혼만을 찾아가 소원을 들어주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영혼을 소환해 소멸시키는 장면이 주마등 지나가듯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곤 다시 차원의 경계선으로 돌아온다.


"잘 보았는가. 이것이 이제부터 당신이 이승에서 수행해야 할 임무이며, 신이 소환하기 전까지 이승을 벗어날 수 없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합니까?"


"신이 소환하기 전까지. 이 외 다른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 책을 꼼꼼히 정독하라."


저승사자는 채경에게 한 손으로는 들 수 조차 없이 무겁고 두꺼운 책 한 권을 건넨다.


"하지만 이승으로 내려간 직후부터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네? 그게 무슨 뜻인지.."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게 될 때가 되면 정해진 기간까지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고 정해진 기간까지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거나

신이 소환하기 전에 능력을 상실하면 당신의 신체와 영혼은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수단으로 소멸하게 되며,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단, 정해진 기간까지 계약을 잘 성사시키고 능력 상실이나 소멸 없이 신에게 소환된다면 천국에서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과 재회하게 될 것이다. 이해했나?"


"네..."


채경의 대답과 동시에 저승사자는 사라졌고 채경은 차원의 경계선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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