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퇴소하던 날
조리원에서 아기와 퇴소하던 날 아침 남편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 어머님이다.
“집에 몇 시에 가? 미역국이랑 반찬 해놨는데 가는 길에 들렀다가 가. 가는 길에 잠깐 들르면 되지 뭐.“
아기와 차를 타고 10분이면 가는 집. 5분이면 도착하는 어머님댁. 먼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반찬 해뒀으니 집 가는 길에 들렀으면 하셨던 것이다. 잠시 고민했다.
“음. 바다 얼굴 보고 싶은 게 아닐까? 들렀다 가자.“
몇 년 동안 수백 번을 넘게 지나다니며 아무 사고 한번 없던 길인데 어쩜 이렇게 조심스러운 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아파트 입구에 진입하자마자 멀리서부터 마스크를 쓴 어머님이 보였다. 두 손이 모자라 바닥에 까지 바리바리 쌓여있는 짐도 같이 보였다. 반찬과 과일꾸러미 었다. 남편이 얼른 내려 짐을 건네받고 나는 자동차 뒷좌석 문을 열어 바다를 보여드렸다.
너무 기뻐하시며 반겨주시고, 몸 괜찮은지 나의 안부부터 물어주셨다.
“바다야, 기도하자.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바다가.”
백일해 주사를 맞은 지 2주가 되지 않아 아가의 발끝을 조심스레 잡고 기도해 주셨다. 기도 중에 글썽이는 목소리에 마음이 뭉클하면서 바로 집 가려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난 뭐가 그리 급하고 더 중요했던 걸까. 이렇게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후로도 어머님은 바다를 보러 와 안을 때마다 기도부터 하신다.
‘어머니의 기도가 이런 거구나. 남편도 이런 기도 속에서 자랐겠지.’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나도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안을 때 기도해 보고, 밥 먹을 때, 기저귀 갈고 눈을 마주칠 때, 잠든 바다에게 속삭여본다.
물려줄 재산도, 명예도,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 당장 전해줄 수 있는 믿음의 유산이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