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스르며 기억을 뒤적인다. 추웠지만 마음은 쉽게 따뜻해졌고 어두웠지만 쉽게 웃을 수 있었다. 지난 그 무채색 시절들은 작은 불빛만으로도 환했고 연말에 거리를 메운 노래로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즐거워했다. 대단한 것이 들어있지 않은 조악한 플라스틱 붉은 장화에 몇 개의 과자가 들어있는 선물도 받으면 신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새 옷과 새 신발을 구입하는 일은 연 중 행사니 그 옷을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드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고 제법 흥분되는 긴 밤이었다.
잠시 한국을 떠나 살던 시절, 경제대국이던 그 나라의 선물은 손으로 만들거나 과대한 포장지에 묻힌 잠옷이나 양말, 직접 만든 음식이었다. 이미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이후니 그런 소박한 선물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선물과 함께 한 손으로 쓴 카드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담긴 동봉된 사진. 선물을 받으면 카드를 먼저 열어 읽어보고 준비한 마음에 감사함을 표하고 선물을 열어 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기쁨을 나눈다. 꼭 필요한 시점에 받았다며 특별한 애정을 표하고 감촉을 느끼고 음식의 맛을 보며 감탄하고 준비한 사람의 노고를 칭찬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주고받는 마음을 표현함으로 준비한 사람의 마음과 받은 사람이 모두 흡족해지는 순간이다.
연말이 되니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모두의 가슴을 파고들어 새해에 대한 기대마저 모호한 시간이 됐다. 갑자기 아주 먼 예전의 시간으로 날아가 '맞아. 그때는 그랬었지'하는 기억을 소환하고 불빛조차 어두웠던 시간을 밝혀주던 웃음을 기억해 낸다. 작지만 큰 기쁨과 온기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는 시간이다.
손으로 카드를 만들고 작지만 선물꾸러미를 꾸리고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이어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장갑 한 켤레, 따뜻한 양말, 일기장, 작은 곰인형, 사탕이 가득한 유리상자, 읽고 싶던 책 한 권, 선물가게 쇼윈도에 있던 예쁜 캐릭터의 저금통, 분홍색 머리 빗과 거울 한 세트... 그리고 함께 동봉한 손으로 쓴 글이 담긴 수제카드.... 읽으며 쓴 사람의 마음을 느끼고 작은 감동에 마음에 온기가 차던 그런 순간들이 기억난다.
이제 다시 그런 시간이 왔다. 빛이 그 광채를 잃어도 마음의 온기로 밝게 비추어야 하는 연말이다. 좋은 일들을 기억에서 꺼내어 하나씩 매달아 불빛을 비추고 커다란 트리의 장식이 되게 할 시간이다. 생사를 오가는 아픈 기억들을 잠시 묻어두고 살아있는 오늘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하는 시간이다.
물건이 너무 흔하고 경조사에 동봉하는 손 편지가 상대를 당황하게 한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색해진 그 진심. 잊힌 진심대신 눈이 커질만한 브랜드의 선물과 그 상자가 보여주는 기쁨의 크기. 이제는 선물을 하기 힘든 시간이 되어버렸다. 진심에 대한 문화가 소멸된 건지 돈으로 환산하는 마음의 크기가 따라가기 벅차다. 마음을 표현하기에 물질만으로는 좀 부족한 느낌이다. 고가의 선물을 남발할 경제력도 그럴 마음도 없다. 허니 이제 그런 마음일랑 접어 넣어두어야 하나 싶다. 온라인으로 오는 단체 연하장도 공식이 되어 버렸다. 카드도 새해 메시지도 영혼 실종이다.
식사를 하고 얼굴을 마주하지만 타인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만리다. 세상은 비행기의 난기류보다 더 출렁인다. 비상탈출을 할 호흡기를 찾아야 하나 싶은 지경이다. 한 해가 차갑고 냉담하게 저물어 간다. 어두워진 길과 빈 가지와 식어버린 마음을 데워 줄 글을 쓴다. 하던 대로 가던 길을 간다. 희미한 미소라도 피어오를 마음을 챙기며 따뜻하게 데운 손을 내밀며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한다.
https://youtu.be/cjnGRpjBpRk?si=QpprPV7k5UgR71u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