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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진 기억과 무뎌지는 감각, 권태는 구토를 부른다

구토/장 폴 사르트르

by 하루하늘HaruHaneul

많은 책을 썼으나 한 권도 소유하지 않은 대단한 작가를 글 속에서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 호기심이 더해진다. 읽고 나서도 휘발되는 기억들을 붙잡으려 집착을 놓지 못하는 것이 책이다. 얕고 넓은 때로는 오리무중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이 물성에 메여 사르트르를 만난다.


의식의 존재방식이 빈 그릇과 같아서 필연적으로 채워야 하는 속성을 지녔다는 그의 말에 스스로 위안해 본다. 겹겹이 싸인 인간의 깊이를 풀어헤치며 '나'라는 존재를 다독을 통해 찾으려던 작가를 따라 그의 책을 펼쳤다.


존재와 구토를 유발하는 우연한 '것'들을 마주하는 인간이 느끼는 부조리, 그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주인공 로캉탱의 생각을 빌어 이야기한다. 때로는 난해하고 순간 깊이 몰입되는 그의 글. 독백을 하듯 일기를 써 내려가서 그런 걸까. 작가를 책 속에서 만나는 기분이다.


서른 살의 역사학자 앙투안 로캉탱이 부빌에 머물며 드 로르봉 후작의 역사 연구를 하는 중이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그곳에서 알파벳 순서로 책을 읽는 독서광을 만나고 집 근처 카페와 공원을 드나들며 시간을 보낸다.


길을 가는 노파의 쥐며느리 같은 굽은 등을 보며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구술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인생을 축약하는 철학자의 단상을 발견한다. 꼭 실현되어야 하는 미래가 있는가에 대한 로캉탱의 독백.


'저기에', 지금은 여기에, 미래는 실현되는 중인 인간에게 다가오는 순수한 시간을 느끼는 순간 구토를 느끼는 주인공. 시간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고 새로움은 없다. 반복되는 시간의 소리.


선명한 색상과 코끝에 남아있는 냄새, 귓가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분명한 기억은 행복을 부르고 권태는 삶을 위태롭게 한다. 희미해지는 과거 속에 묻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로캉탱, 기억은 낙엽만 가득한 악마의 지갑이라 말하는 작가의 표현이 재밌다. 뿌옇고 희미해지는 지난 시간들 속에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고 재편성하는 자신을 힘들어한다.


요약된 지식, 파편화된 기억, 봤어도 기억되지 않는 순간들, 접촉의 순간이 모두 사라지고 말만 남아있다. 말에 의지한 몽상. 배경, 인물, 동작들이 살아날 때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하나 말로 남아있는 순간들에 실망을 한다.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지만 희미할 뿐 현재만이 남아있다.


도서관에서 만난 독서광이 사진을 보며 읊어대는 내용들에 로캉탱은 생각이 많아진다. '여행은 좋은 공부이며 책에서는 정신과 육체가 변한다고 되어있더라고요.' 여행은 많이 했지만 정신이 변했는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 그로 인해 신체가 달라졌는지 책 속의 내용처럼 엄청난 모험을 해보았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니다. 책 속의 이야기와 경험과 실천은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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