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코알라 Nov 09. 2022

아이의 언어

나의 아이가 말했다.

                    

"엄마"와"맘마"로 시작된 아이의 언어, 그 깊은 울림을 시작으로



언어가 주는 감동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울음소리와 옹알이로 처음 목소리를 들려주던 아이가 처음 “엄마”라고  불러주었을 때의 감동의 순간은 모든 엄마에게 그러할 것이다.


“엄마”와 “맘마”로 시작한 아이의 언어는 두 마디 단어일 뿐이지만 아주 깊은 울림이 되어 힘든 육아라는 고행을 버티게 한다.





3살, 복직을 하게 된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간 어린이집 앞에서  "아니, 아니"



아이가 커갈수록 언어로 전해준 감동은 어른세계 에서 언어와는 또 다른 전달의 힘이 있음을 느꼈다.

작은 몸짓과 두 세 마디의 단어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아이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육아휴직이 끝난 후 복직을 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간 어린이집 앞에서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아이는 이내 엄마와의 헤어짐을 눈치 채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 아니”

그저 아니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간절함과 불안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나는 애써 웃으며 인사하고 사무실로 발길을 재촉하면서도 그렁그렁해지는 눈물을 겨우 참아내곤 했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3살 아이가 즐겨하던 말은 "밝은 사람"



3살이 된 아이는 한참동안이나 “밝은 사람”이라는 말을 즐겨했다. 엄마는 “밝은 사람” 아빠는 “밝은 사람” 나는 “밝은 사람”이라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예쁜 단어였다.

어디서 듣고 하는지, 그 뜻을 어떻게 알고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 밝음의 에너지가 느껴져 들을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말이었다.

매일같이 말하던 단어였지만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게 “밝은 사람”은 3살 아이의 언어로 남아있다.





                                                                                

아이가 4번째 맞이하는 봄이 왔다. 이제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커버린 아이는 엄마와 산책을 하며 “봄이 오면 따뜻해”라고 말하기도 하고 벚꽃을 ‘핑크 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봄이 갈 무렵 “이제 벚꽃이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됐어”라고 말해주자 아이는 나무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무야 이제 초록색,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을 거야?”


          


4살 아이와의 마트놀이 중 깎아달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말했다. 

"까까는 없는데요?"



장난감으로 마트놀이를 하던 어느 날, 계산 놀이를 하던 아이가 말했다 “당근은 500원입니다”

“깎아주세요”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까까는 없는데요?”

4살 아이의 언어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한참을 웃었다. 아직도 그날의 아이의 표정과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맴도는 건 폭풍 성장을 하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아쉽기 때문인가 보다.



아빠의 출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5살 아이

몇 밤을 더 자면 오는지 손꼽으며 기다림의 감정도 배워가고,

아빠가 오는 날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는 날의 설렘도 알아가며                    



5살 아이는 아빠의 출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종종 해외출장을 가는 아빠가 몇 밤을 더 자야 만날 수 있는지도 알아가며 기다림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배워갔다. 처음엔 아빠가 가는 날은 많이 울기도 했지만 점차 아이는 아빠가 약속한 날이 되면 돌아온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잦은 출장을 가는 아빠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벤트 같은 날로 만들어주기 위해 출장 간 아빠가 오는 날은 우리만의 피켓을 만들어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아이에게는 이렇게 아빠를 보러 마중 나가는 날이 몇 밤의 그리움을 참아낼 수 있는 이벤트 같은 날이 되어 그 후로는 아빠가 오는 날을 손꼽으며 마중의 즐거움을 알아갔다. 아빠가 출장 가기 전 함께 도자기 마을에 가서 만들었던 아이의 첫 도자기 그릇이 집으로 도착했다. 직접 손으로 빚은 그릇 모양의 흙이 도자기가 되어 오자 아이는 신기한지 이리저리 보며 얘기했다. “아빠 몇 밤 더 자야 오지? 아빠가 와서 도자기를 보면 깜짝 놀라겠지? 아이는 그렇게 아빠가 올 때까지 도자기를 몇 번이나 꺼내보며 놀랄 모습의 아빠를 떠올렸다. 





바쁜 아침 출근길 " 엄마! 놀이터에 가을이 왔어! "라는 아이의 말에

" 그럼 우리 가을이랑 좀 놀다 갈까? " 대답해 준 나.

쫄깃하게 지각을 피했던 그날, 기다려주길 참 잘했던 그날



아이가 맞이하는 5번째 가을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정신없이 출근과 등원 준비를 마치고 나왔는데 집 앞 놀이터에 전날과 달리 낙엽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놀이터는 그야말로 노란 낙엽이 이불이 되어 덮여있었다. 그걸 본 순간 놀이터로 달려갈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이는 나의 직감대로 지체 없이 놀이터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 놀이터에 가을이 왔어!” 이 말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5살 아이의 너무나도 멋진 언어였다.

그 순간 시계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나는 대답해 주었다. “그럼 우리 가을이랑 좀 놀다 갈까?”

아이는 낙엽을 만지고 던지고 밟고 5분의 짧은 시간 동안 소중한 가을놀이를 했다. 나는 그 시간에도 시계를 분 단위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예쁜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서둘러 아이를 등원시키고 8시 59분에 겨우 지각을 피해 사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생각했다. 그저 난 단 5분을 기다려줬을 뿐이지만 그 5분이 아이의 하루를 얼마나 즐겁게 해 주었을지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기다려주길 참 잘했어’




6살 아이의 언어에는 진한 향기가 베어나고 생각이 커졌다

"엄마가 새가 되어 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럼 하늘나라에 가서 외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아이는 꽃과 같다. 물을 주는 대로 꽃이 자라듯, 사랑을 주는 대로 눈에 보이게 크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6살이 된 아이가 말하는 언어의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

“엄마 재미있게 놀아줘서 고마워”

“오늘 유치원에서 엄마가 너무 많이 보고 싶었어”

“친구가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아서 속상했지만 ‘우리 같이 놀까’라고 말했어”

꽃 같은 아이는 이제 언어로 춤을 추듯 마음과 생각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하늘나라에 계신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말했다.

“엄마가 새가 되어 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럼 하늘나라에 가서 외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텐데”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을 마치 이해라도 한 듯, 아이는 말했다. 아이의 한마디에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다.




겨울 아침이면 창 밖을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눈이 내린 아침이면 아이가 분명 눈을 만지고 싶어 할 테니 여느 때 보다도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하니까! 

그날도 아이는 또 한 번의 겨울을 보내며 계절과 함께 커가고 있었다.



눈이 펑펑 내렸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창밖은 밤새 내린 눈으로 덮여 온통 하얀 세상이 되어 있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을 먼저 보는 건 혹시 눈이 내린 아침이면 아이가 분명 눈을 만지고 싶어 할 테니 여느 때보다도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생긴 또 하나의 습관이었다. 그날도 눈이 온 풍경을 보고 서두른 덕에 평소보다 30분 먼저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눈이 내린 겨울 아침 아이는 그렇게 30분의 시간을 눈과 함께 하며 계절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놀이터 앞 벤치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에게 말했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눈사람이 기다리고 있지 못할 수도 있어, 다른 아이들이 놀이터에 와서 놀다 보면 눈사람이 망가질 수 도 있거든' 나의 말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아니라 햇빛이 녹여서 없어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기다릴 수 있는 만큼은 날 기다렸을 거야”

아이는 또 한 번의 겨울을 보내며 계절과 함께 생각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우리가 주고받았던 식판 쪽지에 쓰여있던 그 말

"엄마 많이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5분이면 충분한 육아에서의 기다림, 그 마음이 닿았던 날



7살이 된 첫날, 아이는 흔들거리던 아랫니가 빠졌다. 아이를 키우며 나이에 따른 신체변화가 올 때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몸이 성장하는 만큼 아이의 생각은 또 얼마나 커질까. 7살이 된 아이를 보며 벌써 너무 많이 자란 것 같아 기특하면서도 조금은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컸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는 글씨를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작은 쪽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유치원 가방 안에 매일 식판을 씻어 넣어주는데 그 식판 뚜껑은 우리의 러브레터 공간이기에 충분했다. 식판에 쪽지를 붙여놓으면 아이는 가방 안에 답장을 넣어놓고는 했다.

대부분은 “엄마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힘내요”라고 쓰여 있었다. 어느 날 쪽지에는 보통날과 다르게 쓰여져 있었고 난 아직도 그 문구를 기억한다

“엄마 많이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아를 하며 사실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일은 아이를 기다려주는 일이었다. 더욱이 늘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일하는 엄마인지라 자칫 아이를 재촉하게 될 수 있는 순간마다 난 최선을 다해 아이를 기다려줬다. 그럴 때마다 느낀 건 기다려주는 시간은 사실 5분이면 충분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항상 5분 뒤에 난 스스로를 다독여줬다. ‘잘했어, 잘 기다려줬어’

아이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고 쓴 쪽지가 아닐지라도 난 그날 아이의 쪽지가 나에게 준 울림을 기억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두통, 아픈 엄마를 안아주는 아이의 성장을 느끼며 아팠지만 충분히 완벽했던 하루였다



갑작스럽게 두통이 찾아온 날이었다. 두통약을 먹고 아이에게 잠시 누워있겠다고 얘기를 하고 누워서도 아이의 저녁을 무얼 해줄지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라 웃음이 났다. 아이가 아빠에게 전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엄마가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을 2알 먹었어. 아빠가 일찍 와주면 좋을 것 같아”

통화를 끝낸 아이는 아프지 말라며 누워있는 나를 안아주었다. 예기치 않은 두통에, 예기치 않은 아이의 큰 모습과 내가 받은 사랑을 느꼈던, 아팠지만 충분히 완벽했던 하루였다.



"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4시까지만 일 하면 안 될까요?"

워킹맘인 엄마를 늘 기다려야만 했던 아이가 어느 날 건넨 말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는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느라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곤 했다.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며 나와 함께 출퇴근을 하던 아이는 6살이 되던 해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에 가고 싶어 했다. 워킹맘으로 엄마에게 직장 내 어린이집만큼 마음 편한 곳은 없었지만 워낙 활동적인 아이는 유치원에 가면 재미있는 활동이 많고 낮잠을 안자도 된다며 유치원에 가고 싶은 이유를 얘기했고 난 언제나처럼 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아이의 말에 반응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유치원으로 옮긴 후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회사에 이렇게 물어보면 안 될까?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4시까지만 일 하면 안 될까요?”


엄마의 복직과 함께 3살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며 아이는 주로 마지막까지 남아 나를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그동안 많이 기다려 준 아이에게 더 기다려 달라는 말 대신 다른 말로 응답해주고 싶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든든한 팀장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난 회사에 시간제 근무를 신청할 수 있었다. 승진을 위해서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선택이지만 내 선택의 의미를 팀장님은 알고 계셨다. 팀장님은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일해 온 육아 선배이기도 했는데 나의 이런 생각을 온 마음으로 들어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못했지만 이주사는 아이 옆에 충분히 함께 있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 내가 봐온 이주사는 아이 옆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 언어는 아이의 말도 어른의 말도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팀장님이 건네 준 언어의 힘으로 나는 무사히 아이의 말에 응답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엄마 회사에 얘기했어,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고. 이제 우리 4시에 만나자”

폴짝폴짝 뛰며 나를 끌어안던 그날 아이의 환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8살 아이의 언어는 깊은 울림이 되고

"그러니까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거야"



아이는 8살이 되었다.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어 대화를 하다 보면 때론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고 있는 나를 빤히 보던 아이가 말을 건넨다.

“엄마, 지금 그 머리 그대로 예쁜데?”

“엄마 아직 머리 다 묶은 거 아닌데? 지금 이 머리는 묶다가 만 머리 같지 않아?” 머리를 마저 묶으며 대답하는 나에게 아이는 말했다.

“엄마~ 김홍도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는데 김홍도가 그린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그리다가 만 것 같다고 했었대. 그러니까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거야”

아. 머리를 마저 묶지도 못한 채 난 오늘도 아이가 건넨 한마디가 울림이 되어 이렇게 또 배운다.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의 아이는 먼저 말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어른이지만, 아이의 언어를 통해 어른은 함께 성장한다.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되는 나의 아이의 말, 그 울림을 통해 난 오늘도 조금 더 멋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