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들이 운전하는 차타고, 코스트코 장보기
평온한 오후, 거실에 앉아 있는 아들에게 슬쩍 말을 건넸습니다.
"아들, 엄마랑 장 보러 갈까?"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네요. 예전부터 장 보러 가는 걸 유난히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이제는 제법 운전대가 익숙해진 아들이 운전석에 앉고 저는 옆자리에 앉아 봅니다. 그 덕에 대화 사이사이에 이메일을 체크하고 짧은 답장을 보내는 여유도 부려봅니다. 운전석을 내어준 것뿐인데 삶의 무게를 아주 조금은 나누어 든 것 같아 마음이 참 편안해집니다.
차 안이라는 공간은 참 묘한 힘이 있어요. 앞만 보고 달리는 그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친구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요즘 부쩍 관심이 생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아들의 조잘거림을 듣다 보면 어느새 마음결이 읽히기도 하고, 슬쩍 제 생각 한 자락을 얹어보기도 합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도 도란도란 피어나는 이야기들로 장을 보러 가는 길은 늘 대화의 꽃이 피어납니다.
마트에 도착해 카트를 채우는 손길도 이젠 제법 듬직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릇한 로티세리 치킨과 고소한 호밀빵을 담고, 요즘 유행한다는 크림브뢸레와 두바이 쫀득 찹쌀떡도 잊지 않고 챙겼습니다. 하나하나 고르다 보니 어느새 카트가 수북해졌네요.
무거운 카트를 밀고, 짐을 옮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운전까지 도맡아 하는 아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다 키웠다"는 말이 입가에 맴도는 순간, 뿌듯함 뒤로 묘한 애틋함이 밀려옵니다.
기특하게 잘 자라준 아들, 그리고 그 곁을 지켜온 나의 시간들. 오늘 장바구니에 담아온 건 맛있는 음식들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아들과 나란히 걸으며 채워 넣은 소소한 행복이 앞으로 다가올 4월 이후의 빈자리를 미리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