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아들이 구워주는 고기 기쁘게 얻어먹기
창밖에 해는 뉘엇뉘엇, 어느새 집 안은 정적과 어둠이 깔리지만 주방 너머로 들려오는 규칙적인 달그락 소리. 이제 곧 입대를 앞둔 아들이 조리대 앞에 섰습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오징어 제육볶음이라며 아이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재료들을 다듬습니다.
가만히 그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달궈진 팬 위에서 양념 된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 그리고 손질한 오징어가 들어가는 찰나의 치익 하는 소리들. 아이는 국물이 자작하게 잦아들 때까지, 혹여 고기가 타지는 않을까 묵묵히 주걱을 움직이며 뒤적뒤적 공을 들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 열기 속에 섞인 아이의 집중한 옆얼굴을 보고 있자니, 지난 세월의 장면들이 겹쳐 지나갑니다. 홈스쿨링을 하며 나란히 앉아 책장을 넘기던 그 작은 아이가, 어느덧 자라 저리도 듬직하게 자기만의 요리를 완성해가는군요.
식탁 위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찬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습니다. 냉장고에 있던 로메인을 꺼내 정성껏 씻고, 알싸한 마늘과 쌈장을 나란히 놓은 품새가 제법 야무집니다. 그 옆으로 현미와 백미를 3대 1의 비율로 섞어 지은 갓 지은 밥이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취익- 하며 마지막 김을 내뿜던 압력솥에서 막 퍼 올린 밥에서는 구수하면서도 달큰한 향이 번져 나옵니다.
어느새 소담하게 차려진 저녁 한 상.
초록빛 로메인 한 장을 손바닥 위에 펼치고 그 위에 김이 나는 밥 한 술, 매콤한 불향을 머금은 제육 한 점, 그리고 마늘과 쌈장을 조심스레 올립니다. 입안 가득 큼지막하게 한 쌈을 넣어 천천히 음미해 봅니다.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의 신선함 뒤로 쫄깃한 오징어와 고소한 고기의 풍미가 어우러집니다. 굳이 대단한 수식어를 보태지 않아도, 그 묵묵한 동작 속에 담긴 아이의 진심이 온 입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대화가 많지 않아도 괜찮은 저녁입니다.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말갛게 비워내고 나니, 몸의 허기뿐만 아니라 마음 한구석의 서늘함까지 조용히 채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아이가 건네준 이 소박하고도 귀한 식사 한 끼에,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