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아들에게 커피 얻어먹기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시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산책 겸 책도 빌릴 겸 나선 길. 우리 동네 도서관은 평지에 있는 보통의 곳들과 달리 호젓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어 5분 남짓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합니다.
오랜만에 걷는 언덕길이 낯설었는지 아들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장난스레 숨을 몰아쉽니다. 생각보다 길이 험하다며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 같아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사실 이 도서관은 아들에게 조금 생소한 곳입니다. 도서관이 지어질 땐 고3 입시 중이었고, 개관한 뒤에는 줄곧 서울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느라 정작 집 앞 도서관은 오늘이 처음이었으니까요.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니 홈스쿨링을 하던 시절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때 우린 새로 생긴 상현도서관을 참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요. 깨끗한 서가 사이에서 함께 책을 고르고, 문제집을 풀다 배가 고파지면 근처 분식집에서 소소한 행복을 나누던 그 시절... 그 아이가 어느덧 훌쩍 커서 이제는 군 입대를 앞둔 청년이 되어 내 곁에 서 있습니다.
동천도서관은 분위기가 자유롭습니다. 계단식 공간에 편히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의 낮은 대화 소리, 칸막이 하나 없어도 각자의 세계에 몰입한 이들의 정적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듬성듬성 여유 있게 꽂힌 책들 사이에서 아들은 숙련된 솜씨로 제가 찾던 책들을 골라내고, 대출기 앞에서 능숙하게 일을 돕습니다. 묵직한 책들을 대신 들어주는 아들의 옆모습을 보니 참 든든하더군요.
도서관을 나서는 길, 저는 아들의 손을 슬쩍 맞잡았습니다. 언덕 아래에 다다를 때까지 아들은 손을 놓지 않고 따뜻하게 잡아주었지요. 온기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달되는 것 같아 참 좋았습니다.
"아들, 엄마 카푸치노 먹고 싶은데... 사줄 테야?"
"알겠어요. 오늘 과외비 들어왔으니까 제가 살게요."
아들이 직접 땀 흘려 번 돈으로 사준 카푸치노를 들고 돌아오는 길. 몽글몽글한 우유 거품 위로 행복이 내려앉은 것만 같아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 그 어떤 고급스러운 커피가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있을까요.
입대 전 남겨진 시간들이 카푸치노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