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일하는 엄마를 위해 분리수거 대신해 주기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가장 피부로 느끼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제게는 아마도 현관 앞에 놓인 분리수거 바구니가 가득 차오르는 즈음인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다시 돌아온 분리수거일이 생경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밖에서 일을 하는 엄마로서 집안의 소소한 일정들을 매번 완벽하게 챙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지요.
깜빡 잊고 지나칠 뻔한 사소한 번거로움을 요즘은 아들이 말없이 채워주고 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묵직한 바구니를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엄마, 제가 하고 올게요"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소매를 걷어붙이는 그 익숙한 동작에서 이제는 제법 어른의 성실함이 묻어납니다. 고맙다는 제 인사에 아들은 그저 덤덤하게 대답하더군요.
"네 일, 내 일이 따로 있나요. 같이 사는 집인데요."
그 짧은 한마디가 가슴에 낮게 내려앉았습니다.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에 생색내지 않고, 타인의 수고를 자연스럽게 나누려는 마음가짐이라면 서울대에 진학해 학업적인 성취를 이룬 것보다 생활 주변의 작은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제 손으로 직접 해내는 태도가 저를 더 안심하게 합니다. 지식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을 대하는 정갈한 자세라고 생각하니까요.
이제는 이 아이를 홀로 독립시켜도 되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머지않아 마주하게 될 군대라는 낯선 공동체 속에서도 아들은 아마 지금처럼 행동할 테지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주변을 살피고, 누군가의 짐을 기꺼이 나누어 지는 사람. 선후임들과 어우러져 지내는 법을 이미 집안의 작은 일들을 통해 몸소 익혀온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의 걱정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입대 전 남겨진 시간. 아들은 여전히 묵묵히 집안의 여백을 채워주고 있고, 저는 그런 아들의 손길을 보며 다가올 이별을 담담하게 준비합니다.
비워진 분리수거 바구니만큼이나 제 마음도 한결 가볍고 평온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