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가다듬고, 기다립시다. 사랑으로 폭력을 몰아낼 때를.
날이 제법 풀려 더욱 평화롭게 느껴지는 오늘의 한가한 아침, 어김없이 산책을 나섰다. 최근 들어 부쩍 포근해진 온도와 오늘의 하늘, 그리고 날씨의 공기가 입춘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설득하는 듯했다. 나도 못 이기는 척 바람을 따라 동네 산을 향해 걷게 됐다. 산길로 쭉 걷다가 익숙한 교복을 입고 산으로 등교하는 학생을 보았다. 내 모교의 동복이다. 아직은 사이즈가 익숙하지 않은지 어색하게 남아도는 교복 마이를 자꾸만 매만지며 소년은 학교 방향으로 사라졌다.
잠시 소년의 학교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 흐릿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또렷이 기억난다. 오랫동안 오르막길을 등반하듯 걷고, 입구를 지나 얼룩덜룩한 대리석의 계단을 오르면 나무 재질의 미닫이문이 반긴다. 그 안의 풍경은 꽤 현대화됐을 것이다. 바뀐 것은 교실 내부와 학생들의 수 정도이려나. 요즘은 한 반에 20명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는 기사를 보고 적잖이 놀란 경험이 떠오른다. 인구 절벽 시대, 출산율 0.78의 나라. 그 여파가 벌써 두드러지는 것인가.
여성들에게 인구 문제의 해결을 단독적으로 종용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던 폭력들을 비로소 감지하기 시작한 세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제를 한 성별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과거의 폭력을 반복하며 퇴보할 뿐이며, 당장의 문제를 몇 년 뒤로 미루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여성들을 타깃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 방향성이 애초부터 어리석고 그 자체로 폭력적인 시선이라는 말이다. 사회의 안정과 집단 간 갈등이 완화되어 집단의 유대감이 긍정적으로 활성화되면, 그제야 자연스럽게 부가적으로 수반되는 효과를 억지로 채혈하듯이 끌어들이려 하면, 당장에는 성과를 마주할 수 있을지 몰라도(솔직히 그런 방법에 성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폭력성에 더욱 실망한 군중들이 더 크게 봉기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사회가 진정으로 사랑을 우선하고 남 탓하지 않으며 서로를 배려하길 고대한다. 그때까지 우리는 마음에 그 아름다움 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저 필요할 때 목소리를 내면 된다. 때는 온다.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