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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29. 2022

내 인생을 바꾼 벚꽃 한 잎

이 겨울에 갑자기 벚꽃 이야기

시간이 남아 책과 노트를 들고  카페에 갔다. 딱히 무엇인가를 읽고 적어야겠다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습관처럼 참지 못하고 의자에 앉았다가

지금까지 적은 글들을 읽었다


속내는 교묘히 감췄구나 싶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묘사와 생각만 가득 차 있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나름 감정을 많이 담으려 노력하니 글들이 너무 방방 뛰는 느낌이 든다. 그것도 과정이라 생각하지만

가끔은 수수한 글로 내 삶도 적어보고 싶어졌다.

기왕이면 아름다운 기억을 쓰고 싶어 더듬어봤다.


오래전 16살 봄날의 벚꽃이 떠올랐다.


그날은 구미의 황금빛 잔디와 소나무가 푸르던

금오산 시 짓기 경연대회 날이었다.


나는 얇은 노트를 들고 한적한 그늘에 자리 잡았다. 바닥의 잔디 사이에 나뭇가지들을 정리하고 나무기둥에 허리를 기대앉았다.

난 지금처럼 별 볼 일 없는 글자 몇 개를 끄적였다. 학교에서 나가라 해서 나왔을 뿐 촌동네 소년에게는 구미가 크고 금오산은 아름다워 정신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니 김밥 한 줄과 음료수를 주며

쉬다오라 했다.

 나는 커다란 연한 녹색의 큰 나무들 사이로 잠시 걸어내려 갔다. 위에서 보니 저 밑에 보이는

예쁜 학교 건물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경북외국어고등학교라 했다.

여기 있었구나. 당시는 입학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새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정문 밖에서 빼꼼히 안을 바라만 봤다.


지금 생각해도 좋은 날이었다. 날은 따뜻했고

공기는 맑았다. 때마침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몇몇 씩 무리 지어 걸어 나왔다.

그들이 내려가는 길을 멀리서 바라보니 핑크빛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들은 꽃잎 같은 분홍색 교복을 입고 수많은 벚꽃 사이를 걸어갔다.

난 봄햇살에 비친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모이라는 시간도 잊고 바라만 봤다.


결국 난 원래 가려던 학교를 가지 않고 그 학교에 입학했다.

만약 벚꽃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내 인생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난 지금도 봄이 되면 떨어지는 벚꽃 속에서 16살 봄날을 화상한다.


때로는 한 장의 벚꽃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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