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집에 있는 등기소 아이였는데 나이는 나랑 한 살 차이가 났다. 매일 그 집 아주머니께서는 나를 보면 집에 놀러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종종 그 형과 놀러 가면 아주머니는 엄청 반기셨다. 당시에 잘 먹어보지도 못했던 피자도 해주시고 돈가스로 만들어 튀겨주셨다. 지금은 흔한 음식이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생일날에도 겨우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그 아이는 내게 장난감을 자랑했다. 우와. 난 만져본 적도 없었던 거대 합체 로봇이었다. 난 그 앞에서 작은 원숭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건전지를 넣어서 앞으로 뒤로 가기도 했다. 난 엄청난 그 위용(?)에 감탄했다. 내 눈에 그 형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난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왜 피자 안 해줘요? 돈가스는 왜 안 튀겨줘요?"
"효롱아. 그게 얼마나 비싸고 손이 많이 가는지 알아?"
어머니는 난데없는 나의 요구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앞집 아줌마는 해줬단 말이에요. 엄마도 해줘요. 나 먹고 싶어요."
어머니도 사람이다. 다른 집 어머니와 비교하는 게 어찌 마음이 좋겠나. 처음에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지만 계속된 내 음식 타령에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보셨다.
"앞 집 아 주 머 니 는 해 주 셨 거 든 요."
눈을 똑바로 뜨고 내가 말하자.
어머니는 "그건......"이라고 말을 흐리시더니 한숨만 쉬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머니는 일하랴, 집정리 하랴, 개구쟁이 두 형제까지 키우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게나. 피자 재료도 없는 시골에서 내가 때를 썼으니 어머니 마음도 편치 않으셨을 것이다.
뭐 어쨌든 그때는 이런 사정을 알리 없었다. 어린 내게 앞 집 아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맛난 음식을 잔뜩 먹고, 모든 장난감을 가질 수 있는 아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집이 도시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갑자기 살이 쪘다고 놀렸는데 그것 때문에 가는 건가 이런 생각도 했다. 그건 아닌지 아주머니는 더 자주 놀러 오라고 친구가 기다린다 말했다.
어릴 적 촌동네라 지금보다 정이 많은 시절이었다. 이사 가는 날, 우리 둘은 엉엉 울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주머니에게 우리 집 주소를 적어주고 편지를 보내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그런 내가 대견한지 슬픈 눈빛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직도 아주머니의 그 손의 따뜻함이 기억날 정도로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다.
두 달이 지났을까. 편지가 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정성스레 뜯어서 몇 번이나 읽어봤다. 그리고 답장을 쓰고 몇 년을 그렇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세상이 많이도 변했나 싶다. 스마트폰만 있어도 다 되는 세상인데 그때는 연락 한 번도 그리 힘들었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한 것은 불편은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쓰고? 답장 온 하얀 종이봉투를 뜯는 손맛의 따끈한 두근거림을 카카오톡은 전할 수 있을까. 약간의 수고와 더딘 통신은 가히 감성적이었다.
그 친구가 중학교 들어갈 때쯤 마지막 편지를 썼다. 그때까지도 간간히 연락을 했으니 어릴 적 정은 흘리던 맑은 콧물처럼 끈적이고 질긴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답장이 없었다. 왜일까? 이제 새로 들어간 도시에서 친구들이 많이 생긴 것일까
어린 마음에 좀 서운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 편지 온 것 없죠?"
집에 들어오면서 큰 가방을 벗고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는 나를 오랫동안 보시더니 결심을 하신 듯 나를 불렀다.
그 친구는 하늘나라로 돌아갔다고 했다. 나랑 같이 있었던 그 시절부터 불치병이란다. 큰 도시로 나가서 병원을 다녔지만 역부족이었고, 우리 보다 일찍 자연으로 돌아갔다.
난 멍했다. 그것은 내게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 아이와 놀고 있으면 웃으시던 아주머니의 서글픈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더 자주 왔으면 하는 마음에 더욱 애쓰셨겠지. 아주머니 정성과 큰 장난감이 떠올랐다.
아! 알지도 못하고 누군가를 마냥 부러워하면 안 되는구나.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세상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잘 지내니?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정말 그곳에선 아프지 않고 잘 지냈으면 해.
지친 내 하루도, 너는 얼마나 그리던 오늘일까? 그곳에서는 장난감 로봇이 아니라 정말 거대 로봇을 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