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태어난 흔적을 더듬는 것은 정체성을 찾는 길이다. 삶의 좌표를 잠시 잃었을 때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는 것은 존재 방식과 정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고향이란 삶의 영원한 그루터기다. 비록 태어난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더라도 마음은 늘 그루터기 주변을 맴돌거나 서성이게 된다.
내가 태어나서 성장한 고향을 등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란 거친 바람에 맞서 살다 보니 어느새 머리가 허옇게 변했다. 팽팽하던 얼굴에는 잔주름이 하나둘 생겨 장년의 고개를 휘적휘적 넘어가는 중이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육신도 묵직하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하나둘 피어 쓸쓸해졌다. 유년 시절엔 동구 밖 낯선 세상을 동경하고, 청춘 시절엔 넓은 대처에 나가 살고 싶었다.
그런 소망을 가슴에 안고 대처에 나와 비바람을 맞다 보니 이제는 동구 안의 흙과 바람이 다시 그리워졌다. 사람은 나이 들어갈수록 자신이 태어난 근원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삶의 그루터기를 더듬어 찾는 것에 뒤늦은 감은 있지만,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싶다. 중력을 거슬러 자란 나무가 새 생명을 맞으려면 나뭇잎을 훌훌 털어 맨몸이 되어야 한다.
사람도 자신이 살아온 가슴 저편의 묵은 흔적을 털어내면 생에 대한 의지가 새록새록 샘솟는다. 나는 소설가도 아니요 시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학을 열렬하게 사랑했던 사람도 아니다.
지금까지 고향에서 태어나 살아온 흔적을 무언가에 기대어 발산하고 싶은 마음이 어깨를 짓눌러왔다. 그 버겁고 무거운 짐을 글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지나온 삶의 흔적을 존재의 집으로 그려 내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유쾌한 경험이다. 일상이 모여 나이라는 기둥이 생성되고 가치관도 자라고 개성적인 인격체로 성장한다.
인생은 미완으로 태어나 완성의 길을 향해 가는 나그네의 길이다. 아직은 인생을 알기에는 살아온 세월이 부족하지만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누리려면 지난 삶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
이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삶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지금까지 곁에서 때로는 조언자로 때로는 나침반 역할을 해준 아내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딸들에게는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더불어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고인이 되신 아버님과 고향에 계신 어머님의 보살핌과 형제들의 아낌없는 사랑과 지원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삶의 그루터기는 언젠가 찾아가야 할 뿌리이자 근원이다. 자신의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시대에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그루터기는 사람에 따라 존재방식이 다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을 성장시켜 주거나 정착에 뿌리를 내리도록 도와준 곳이 될 수도 있다.
삶의 그루터기가 어디든 내가 태어나서 성장한 물줄기의 근원을 찾아 더듬어 보려는 것이다. 그곳에는 나무가 그루터기가 되기 전에 꽃을 피웠던 화양연화의 흔적이 간직되어 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나를 존재하게 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설렘과 호기심을 품게 하는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