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락동에 아파트를 봐두고 토요일에 집주인과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하기 전에 딸과 사위가 아파트에 가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둘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계약했다.
아파트는 건축한 지 오래되었지만, 수리가 제대로 되어 있고 전용 13평이면 둘이서 살기에는 적당해 보였다. 최근 서울지역 전셋값이 끝없이 치솟고 있다.
서울에서 월급 생활하는 사람은 자력으로 돈을 모아 전셋집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전셋집을 얻는데 부모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수월하겠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월세나 아니면 서울의 변두리나 수도권에서 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차릴 수밖에 없다.
집주인과 계약을 끝내고 딸과 사위와 함께 아파트 근처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아파트는 가락시장이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가락시장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농산물을 다루어서 종사자들이 찾는 식당이나 술집이 아파트 근처에 많다. 딸네와 점심을 먹으며 전세 자금 계획과 결혼에 필요한 준비물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딸이 결혼해서 살 집을 구했으니 결혼의 큰 언덕은 넘긴 셈이다. 여름 날씨가 무더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몸에 땀이 물 흐르듯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시원하지 않고 후덥지근해서 몸이 저절로 바람을 피하게 된다. 올해는 정말로 시간이 빠르게만 흘러간다.
지난해 수원에 인사발령을 받고 와서 해가 바뀌면서 딸의 결혼식 날짜가 잡히자 시간이 강물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세월이 뭉텅뭉텅 뭉쳐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올해가 인생의 커다란 이정표를 세우는 해가 될 것 같다. 그동안 다녔던 직장도 공로연수 준비를 해야 하고 딸의 결혼식 날짜도 잡혀 결혼식 준비를 챙겨주다 보니 세월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고삐 풀린 것처럼 손끝에서 쭉쭉 빠져나간다.
그렇게 정신없이 빠져나간 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벌써 팔월 중순이다. 요즈음 적도 부근에서 발생해서 올라오는 태풍 소식을 전해 듣는다.
태풍 앞에 몰려온 무더위와 태풍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나기를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는 신세다.
태양 볕이 뜨거우면 지구를 자전시키는 시계추가 고장이라도 날만한데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자전하며 흘러간다. 가는 세월은 가라 하고, 오는 세월은 오지 말라고 막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가는 세월을 막을 수도 없고 다가오는 세월을 피할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이다.
오늘도 시간은 구름을 타고 바람을 따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흘러만 간다. 사람이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란 다가오는 바람결과 눈에 보이는 나뭇잎의 흔들거림과 흘러가는 구름뿐이다.
세월의 시간은 곁에서 머무는 것 같지만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슬며시 다가오는 나그네와 같다. 인생살이가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그 시간 속에서 하나하나 매듭을 짓고 풀고 하는 것이 삶의 구조다.
최근에 직장과 가정에서 한꺼번에 많은 것이 진행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 과정에서 시간을 정해 챙겨야 할 것은 챙기고, 직접 가서 돌보아야 할 것은 살펴보고, 얼굴을 맞대고 풀어야 할 것은 만나서 풀고 있다.
누구나 시간을 조정할 수 없듯이 자신 앞에 닥친 시간은 그때그때 맞게 사용해야 한다. 앞으로 챙겨야 할 것은 딸의 결혼, 전셋집 구하는 것, 은행 대출, 혼수 준비, 직장의 업무, 텃밭 관리, 애경사 챙기기, 어머님 건강 등 통제할 수 없는 일이 기다린다.
그때마다 몸과 마음이 하는 대로 챙기거나 보살핀다. 그런데 일은 순서대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불시에 느닷없이 발생해서 문제다. 그럴 때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지금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가는 세월에 기대어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쉬고 싶다. 그럴 나이도 되었는데 주변의 일은 발생할 때마다 여유롭게 대응할 수 없는 것이 부지기수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나 아닌 타인이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어느 것도 없다. 삶의 시간이 정교하게 작동하듯이 세상사도 주는 것이 있으면, 받은 만큼 내어주는 것이 삶의 이치다.
세상의 일은 공짜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 앞에 다가온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도 사무실 뒤편의 느티나무에서 말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말매미 울음소리에도 세월의 시간이 들어있듯이 그 울음소리를 넋 놓고 듣는 귓가에도 파란 시간이 들어있다. 그렇게 무심한 시간을 무심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여유와 시간의 그림자가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