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에 핀 야생화

by 이상역

사람의 잠재된 재능을 열어주는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다. 그런 우연한 계기는 사람에게 평생 동안 몇 번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한다.


게 그런 우연이 첫 번째로 다가온 것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해가 아니었을까. 비록 남들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고 미래로 전진하기 위한 디딤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 불확실하고 어둑어둑한 인생의 터널을 빠져나와 가슴에 희망이란 싹을 틔우게 되었다. 당시 고교를 졸업하고 무언가를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목표한 대학 진학 꿈을 이루지 못하자 차선의 길로 취업을 선택했다. 나는 막연하게 무언가 되겠지 하는 생각에 시골에서 나무를 해오거나 경운기에 거름을 싣고 논에 뿌리고 밭에 가서 겨우내 말라버린 고춧대 등을 실어 왔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던 어느 날 부산에서 이모부와 이종사촌 동생이 시골집을 방문했다. 이모부는 무슨 일이 있어 먼저 가시고, 이종 동생만 시골에 남게 되었다.


이종 동생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처음 와서 부산에 혼자 갈 수 없어 누군가 데려다주어야 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어머니가 형과 이종 동생과 셋이서 동생을 데려다 줄 겸 바람이나 쏘이고 오라고 했다.


부산에 어떤 기차를 타고 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입석으로 가면서 형과 이종 동생과 셋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처음으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았고 셋이서 대화를 나누며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마치 부산행 기차는 내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게 해 주었다. 동생을 부산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기차에서 형은 내게 학원에라도 등록해서 대학 진학을 다시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갈 길을 뚜렷하게 정하지 않았으면 대학시험을 먼저 보고 나서 결정하라고 했다. 형의 조언을 듣고 집에 돌아와 곧바로 청주에 소재한 학원에 등록하고 대학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공부에 뛰어들었다.


처음 한 달간은 시골에서 학원을 오고 갔다. 재수생이 되어 청주 가는 버스를 타고 학원에 다니자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게 한 달간 학원을 오고 가다 마침 대학에 다니는 사촌 형과 형 친구와 셋이서 청주 우암동 무심천 변에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 집 뒤로는 무심천이 그리고 앞에는 거무튀튀한 냇물이 흐르는 냇가가 자리하고 있았다.


자취 집 주인아주머니는 무당인데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아저씨가 살림하는데 간섭을 해서 갖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저씨의 성격은 자잘하고 말도 많아 얼굴을 마주하기 싫을 정도였다.


가끔 자취방에 전깃불을 켜놓고 늦게까지 공부하면 남의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전깃불 꺼라, 마당 수돗가에서 물을 사용할 때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쓰면 틀어놓고 사용하지 말라는 등 온갖 참견을 했다. 아저씨는 돈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관리비 문제를 놓고 말씨름까지 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간간이 자취 집 마당에서는 신을 부르는 굿을 했다. 그런 날은 공부를 방해한 것이 미안한지 떡과 과일을 갖다 주곤 했다. 무당이 굿을 하면서 신을 받아들일 때는 알 수 없는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평소 아주머니는 아프다면서 마루에 누워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런데 신을 부르는 굿을 할 때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런 초능력의 힘이 귀신을 부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자취 집에서 주문을 외우고 징을 두드리며 굿을 했다.


그런 음산한 자취 집 앞에는 휘휘 늘어진 능수버들과 벚나무가 가로수로 서 있었다. 그리고 자취 집 뒤로 무심천이 물결을 치며 흘러갔다. 하루 해가 서산으로 이울며 노을이 질 때면 천변에 청춘남녀가 모여들었다.


그들이 천변을 거닐며 데이트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질투심을 느꼈다. 자취 집 주변에는 이름 모를 야생초가 담벼락 밑에서 꽃 피우고, 무심천 철교 위로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기차가 매일 지나갔다.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는 자취생활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무심천의 버드나무처럼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밥솥에 밥을 짓고, 배추를 사다 김치를 담그고, 연탄불에 계란말이나 멸치볶음 같은 마른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 점심을 싸가는 일이 늘 기다렸다.


무심천 철교 위로는 충북선이 지나갔는데 밤중에 기차가 적막을 깨뜨리며 ‘덜컹덜컹’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지나갈 때는 그에 덩달아 미로의 세계를 그리는 꿈을 꾸었다. 가끔 그 기적소리는 한밤중에 꿈길을 따라 머나먼 여행을 떠나게 해 주었다.


그 여행을 통해 깊고 깊은 밤에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무심천 철교 위로 기차가 덜커덩거리며 달려올 때면 마음도 쿵쾅거리며 생명의 맥박수가 높아지다가 기차가 무심천 철교를 지나 여운을 남기며 지나갈 때면 내게 대학을 진학해야 한다는 채찍의 소리로 들려왔다.


깊은 밤중에 울리는 기적소리는 마음의 풍향계를 단것처럼 가슴에 돛대를 달아주어 때로는 잠을 설치게 했고 때로는 깊은 잠에 빠져들게 했다. 그런 날은 가슴에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활화산처럼 솟아올랐다.


자취하던 집 근처에는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하고 재수하던 친구가 살고 있었다. 그 친구와 공부하다 무심천에 나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나는 친구가 부러웠다.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을 남이 갖고 있으면 시샘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친구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학원 공부가 지루할 때면 종종 그 친구를 찾아가 노래로 시름을 달랬다. 학원에 다니면서 부족한 인문 분야 과목에 대한 갈증도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학원에서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하나하나 채우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학원에 다니면서 그간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학원 생활 초기에는 모든 과목이 힘겨웠다.


친구들은 3년간 학교에서 배운 과목을 복습하는 차원에서 공부한다지만, 나는 한 과목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과목을 배워야 했다. 따라서 그들보다 두 배 내지 세 배 이상의 공부를 해야만 따라갈 수 있었다. 학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실력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원도 매월 모의고사를 실시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장학금이라야 학원비를 면제해 주는 수준이지만 담임은 학원생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지도하고 격려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본 첫 모의고사 성적은 고교 시절 본 예비고사 성적 그대로였다.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독서실을 다니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자취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난 뒤 이튿날 싸갈 도시락 반찬을 준비해 놓고 독서실로 갔다. 독서실에 도착해서 공부하다 그대로 자고 이튿날 아침에 자취 집으로 와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챙겨 들고 학원에 등원하는 생활을 재수하는 기간 내내 반복했다.


자취 집에서 학원 가는 길에는 작은 냇가를 따라 한쪽은 차도가 다른 쪽은 오솔길이 나 있다. 차도가 아닌 오솔길과 냇가 사이에는 버드나무가 자라고 대폿집이 연이어 있었다.


대폿집마다 버드나무 가지가 휘휘 늘어져 그늘을 드리웠고, 냇물은 무심천을 향해 흘러가고 물은 탁해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가정집에서 흘러나온 하수로 인해 냇물에서는 언제나 칙칙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오솔길에 자리 잡은 대폿집에는 허름한 나무 탁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 탁자 위에는 치마를 약간 걷어 올린 아주머니가 앉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술 한잔 마시고 가라며 유혹을 했다.


가끔 내게도 “오빠! 술 한 잔 마시고 가.”라고 말했지만 나는 시간도 돈도 없어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대폿집을 지나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큰 도로로 나가기 직전 모퉁이에는 자동차 대리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대리점은 학원을 오고 갈 때마다 진열된 차를 바라볼 수 있어 즐거웠다. 물건의 속성은 빛을 받으면 실물보다 더 고급스럽고 멋지게 보인다. 차나 옷이나 도자기 등을 파는 가게에서 은은한 빛으로 물건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대리점에 전시된 차에는 늘 은은한 빛이 서려 있었고 빛을 받은 차는 고급스럽게 다가왔다. 그때마다 언제쯤 나도 저런 차를 사서 직장에 타고 다니며 운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젖어들곤 했다.


자취 집에서 학원까지 가는 길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살았다. 나 또한 그들 속에 포함되어 오솔길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우기 위해 청춘의 한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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