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선택

by 이상역

내일이란 미래를 여는 희망은 젊음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망하는 바를 이루는 것은 아득하고 요원해진다.


내 생애 처음 짧은 기간이지만 고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직장을 다녔다. 그로 인해 직장이란 조직체계도 알게 되었고, 직업이란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직장을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과 부모님이 보태준 돈을 모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막상 직장에 사표를 내고 대학을 선택하려니 마음에 미련과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진학한다고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도 없는데 다시 가슴에 선택에 대한 갈등을 안으려니 착잡했다. 괜스레 대학에 간다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도 생겼다.


어차피 갈 길을 선택했다면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가슴에 응어리진 배움이란 앙금을 풀어내고자 대학을 진학하기로 했다. 그래야 가슴에 남은 배움이란 불씨에 미련과 꿈을 꾸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잠재된 꿈에 휘둘리게 된다. 그런 휘둘림을 막으려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야 한다. 내게 배움에 대한 열망은 나를 괴롭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갈망을 소진하고자 직장에 사표를 내고 대학을 선택한 것이다.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면서 직장에 그대로 눌러앉을 것인가 대학에 진학할 것인가를 놓고 오랫동안 갈등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막 벗어나 생활도 여유로웠다.


그러다 배움이란 학문의 길을 선택하자니 부모님에게 죄송한 생각도 들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 대학에 가지 않고 직장에 그대로 남아 근무하고 있었다면 현재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지금도 공직의 길을 가고 있지만, 경력은 몇 년 더 늘고 직급은 현재와 같거나 아니면 한 직급 정도 높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직장에 사표를 내면서 대학이란 길을 선택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인생을 반반씩 나누어 살아갈 수는 없지만, 어느 선택이 나은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당시 직장에 사표를 내고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겪었던 인생의 좌절과 고통과 시련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과연 똑같이 겪었을까? 삶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성숙하고 영글어 간다.


고향의 비탈진 언덕에는 당시 직장에 그대로 근무할 것인가 대학에 진학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가지 않은 길’처럼 또렷이 새겨져 있다.


삶에서 자신이 갈 길을 선택하고 지나온 시간을 후회한들 무슨 이득이 있을까? 지금에 와서 과거의 시간으로 시계를 되돌릴 수도 없고, 미련을 갖는다고 그 시간이 되돌아오지도 않는다.


젊은 시절에 공직이란 길에 발을 들여놓은 경험은 이후 다른 직업을 넘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읍사무소를 퇴직한 후 다른 길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리워한 적도 없다.


학교 교육을 끝내고 얻은 첫 직업이 사람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젊어서 공직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공직이란 길이 있는 줄도 몰랐고 또 그런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시험이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격의 길이 열린다. 그날 이후 공직은 남들보다 가기 쉬운 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공직에 근무하고 있고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먹고사는데 불편함은 없다.


인생은 단막극이 모인 종합예술이다. 나이가 들어 직업에 대한 철학이 생길 만도 한데 아직도 미지수다. 공직에만 근무하다 보니 공직은 무언가 하나에 열정을 쏟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한 가지 업무를 십 년 이상은 맡아 처리해야 제도와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출 수 있는데 때가 되면 자리를 이동해야 하는 특성상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취약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생은 어차피 극본대로 가는 연극이다. 삶이 대본처럼 흘러간다면 고민하거나 고통이 따르지 않겠지만 지금 가는 길이 과연 극본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만 가득 안은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신세다.


직장에 사표를 내던 해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송년회를 가진 기억이 난다. 저수지에서 밤을 새우며 놀고 난 뒤, 이튿날 아침 밖을 나오자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미래도 흰 눈처럼 순백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환영처럼 다가왔다.


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날 아침에 친구들과 뽀드득 소리가 나는 흰 눈을 밟으며 저수지에서 읍내까지 걸어왔던 추억이 새삼 그립다.


그날은 세상이 흰색의 물결로 순백하게 다가왔고, 내가 선택한 미래는 때 묻지 않고 아무거나 그려 넣으면 이루질 것 같은 캔버스의 하얀 빛깔처럼 투명하고 선명하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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