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거나 특기를 발견해서 동기를 부여한 결과 그 길로 가는 친구들을 종종 보게 된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학생에게는 꿈과 희망의 빛이 된 셈이다.
선생님 칭찬에 자극받은 학생은 관심과 칭찬을 더 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고교 시절 학도호국단을 통해 나도 작은 희망의 빛을 만났다. 그로 인해 성격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원래는 내성적인 성격인데 정확하게는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잘 몰랐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교실에 앉아 있으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성격이다.
당시 각 학교에는 교련 과목이 수업에 들어 있었고 학교마다 학도호국단이 편성되어 있었다. 나는 학도호국단에 간부를 맡게 되었다
고등학생도 유사시 전쟁에 동원할 수 있도록 교과목에 교련을 넣어 학생들에게 기초적인 군사 지식과 훈련을 가르친 것이다. 고등학생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학도호국단에 편성되었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이면 제식훈련을 위해 교련복을 입고 등교했다.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조회를 마치고 군사훈련을 하듯 열병식을 하면서 교실로 들어갔다.
당시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중앙에서 실시하는 교련 검열에 합격하는 것이다. 재검열을 받지 않기 위해 교장까지 나서서 교련 선생님의 지휘 아래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가르쳤다.
다른 교과목보다 교련 선생님의 지위는 막강했다. 교련 검열 때가 되면 정규 수업도 교련으로 대체하여 운동장에서 총검술과 열병식 등 제식훈련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의 제식훈련을 위해 성적이 좀 우수하고 덩치가 있는 학생을 선발해서 대대장이나 중대장이란 학도호국단 간부직을 맡겼다.
나도 중대장에 임명되어 일주일간 제식훈련에 따른 구령을 붙이는 연습과 목소리 트이는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을 받기 위해 시골에서 학교까지 아침마다 택시를 타고 등교했다.
교련 선생님은 간부로 선발된 학생들을 데리고 아침마다 학교에서 길상사까지 구보해서 몸을 풀고 난 뒤 함성을 지르고 제식훈련을 위해 구령을 붙이는 연습을 시켰다.
그렇게 일주일간 구보와 목소리 틔우는 훈련을 마치고 후배들을 지휘하는 중대장을 맡았다. 그리고 월요일마다 후배들 앞에 나가 구령을 붙이며 학생들을 지휘했다.
사람들 앞에 나가 구령을 붙이고 제식훈련을 가르치면서 성격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평소 소극적이고 소심한 성격에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남들 앞에 서서 구령을 붙이고 지휘하는 것도 용기와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중학교 때까지 학급 회의나 선생님 앞에서 제대로 발표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학생들 앞에 나가 구령도 붙이고 백 명의 학생을 지휘하는 책임을 맡다 보니 잠재된 성격이 하나하나 드러났다. 내 구령에 따라 사람이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지만, 때로는 교련 선생님에게 욕도 먹고 잘못하면 체벌도 받았다.
학교에서 중대장이란 직책을 달고 교련 시간에 후배들의 제식 훈련을 가르치면서 재미와 흥미를 갖게 되었다. 생전 처음 학교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면서 선생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들곤 했다.
이런 행동과 성격의 변화로 학교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행군이나 학급 간 체육 경기가 있을 때면 반 친구들이나 후배들 앞에 나가 응원을 이끌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성격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고교 시절이다. 그 이후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다. 학도호국단 중대장 경험을 계기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고교 시절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조국 순례 대행진’에 참가한 것이다. 충북 도내 남녀 고등학생 500명이 진천에서 청주까지 교련복에 각반과 수통을 차고 어깨에 목총을 메고 육십 리를 걸어갔다.
학교에서 5명씩 선발되어 가을에 플라타너스가 어우러진 17번 국도를 따라 걸어가다 길가에 초․중학교에 들어가 쉬면서 우유와 빵을 먹어가며 행군했던 기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날 행군 중에 버스나 트럭과 같은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를 피하기 위해 길가 옆 논으로 내려가 먼지가 가라앉으면 다시 올라와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행군에 참여한 남학생 중에는 수통에 소주를 담아 와서 마시거나 몰래 가져온 담배를 피우며 걸어갔다. 행군의 목적지인 청주 일신여고에 도착해서 해단식을 하는데 기절하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속출했다.
지금도 진천과 청주를 오갈 때면 고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행군하며 걸어갔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때 함께 걸어갔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시절 함께 걸어간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친구들은 플라타너스가 어우러진 국도를 걸어갔던 길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가수 김인순의 ‘여고 시절’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고교 시절은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그리운 자리 추억의 시간이다. '여고 시절'이란 노래만 들어도 고교 시절이 저절로 떠오르듯이 학창 시절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청춘의 한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