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가족의 밥벌이를 외면한 채 책만 읽고 사는 사람이 존재할까. 책만 읽는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도 없는 시대다. 더군다나 한 가정의 가장이 가족의 부양은 등지고 종일토록 책상에 앉아 책만 읽는다면 가정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다.
간서치(看書痴)란 책만 읽는 바보란 뜻이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덕무의 친구들은 이덕무가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하자 ‘간서치’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덕무 또한 친구들이 붙여준 자신의 별명을 좋아했다.
이덕무는 서자(庶子)로 태어나서 과거로 출세할 길도 막혔고, 농사를 짓거나 상업에 종사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몸이 병약해서 무과시험도 볼 수 없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이덕무는 책 읽기를 좋아해서 창가에 비치는 햇빛을 따라 책상을 옮겨가며 책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먹을 식량이 떨어지자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던 『논어』를 팔아 양식을 마련했다.
자신이 제일 아끼던 책을 팔아 양식을 마련했다는 우울함에 벗인 유득공을 찾아가 맹자에게 밥을 얻어먹었노라고 자랑했다. 그러자 유득공도 『좌 씨 춘추』를 팔아 이덕무와 술잔을 나누며 위로해 주었다.
유득공은 책을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한 처지는 아니었지만, 친구의 부끄럽고 서글픈 마음을 달랜 것이다. 조선 시대는 출신에 따라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는 신분제 사회였다.
오늘날은 출신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는 아니지만 몸이 약하고 할 일이 없어 책만 읽고 지낸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부를까. 조선 시대에는 책만 읽는 바보라는 말이 그나마 통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종일토록 책상에 앉아 책만 읽는다면 백수라고 부른다.
조선 시대는 신분제 사회고 산업발전이 미약해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제한적이었다. 오늘날은 산업이 발전해서 스스로 노력해서 먹고 살아갈 토양이 넓고 다양해졌다.
지금은 조선 시대 이덕무처럼 종일 책만 읽는 사람도 없고, 책만 읽는다고 해서 ‘간서치’란 별명을 붙여주는 사람도 없다. 이덕무는 몸이 병약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책 읽는 것을 삶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
집안의 가장이면 당연히 가족의 생계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조선 시대나 현대사회나 마찬가지다. 이덕무가 살아간 시대적 상황은 새로운 문물이 중국과 서양에서 밀물처럼 들어오던 시기다.
천주교를 통해 새로운 사상과 의학, 과학, 경제 등 다양한 문물을 접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연경에 다녀오는 관리나 상인을 통해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에 따라 넓은 세상에 뜻이 있는 사람은 신문물이 지적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비록 이덕무 친구들이 그를 ‘간서치’라고 불렀지만, 이덕무는 오롯이 책만 읽지는 않았다. 연경을 다녀온 사람이나 신문물을 접한 사람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지적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조선 시대를 풍미한 실학자다. 유득공,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서구, 백동수 등이 그들이다. 이덕무도 그들과 교류하면서 천주학, 과학, 의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책으로 읽거나 대화를 통해서 갈망과 갈증을 해결했다.
그리고 이덕무가 오롯이 책만 읽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았다면 역사에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실학자들과 교류하고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눈여겨보면서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과 방법을 제시했다.
이처럼 당시 신문물이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백성의 다양한 삶의 해법을 제시한 사람들이 조선 시대의 실학자들이다.
오늘날은 산업과 과학의 빠른 변화로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새로운 책을 찾아 밤을 새워 지식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조선 시대처럼 ‘간서치’라 하지 않고, ‘전문가’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