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오랜만에 내린다. 오전에 봄비가 내리지 않고 오후가 되자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번개까지 치더니 비가 내리는데 정작 가랑비다.
봄비가 내리는 양은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겨울 가뭄을 해소하기엔 양이 적다. 봄비라고는 하지만 좀 이른 것 같고 그렇다고 겨울비라 하기에도 좀 그렇다.
사무실 앞뜰의 목련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다. 가지 끝에 매달린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올랐는데 내일쯤이면 꽃망울이 터지면서 하얀 목련꽃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남쪽에서 매화꽃은 꽃망울을 터트려 만개했고, 산수유는 꽃망울이 막 터지면서 노란 꽃이 송송 피어나고 있다. 봄비가 내리자 나무가 수분을 공급받아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이다.
지금 광양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어 상춘객을 맞이한다고 방송에서 난리다. 매화꽃이 만발한 광양에는 가지 못하지만, TV를 통해서나 눈으로 즐기는 신세다.
봄날은 꽃과 함께 파도처럼 밀려온다. 다른 무엇보다 나무에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면 마음은 한없이 즐겁기만 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아무리 웃음꽃을 피워도 한 송이 꽃만도 못하다.
봄날에 어울리는 단어는 봄비와 봄꽃과 봄처녀와 봄나물이다. 다음 주면 목련꽃이 활짝 피어나고, 다다음 주면 전국에서 벚꽃 잔치가 시작될 것 같다.
봄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오늘은 봄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다 오후에 잠깐 해후했다. 겨우내 메마른 가뭄을 해결해 줄 수 있게 봄비가 많이 내리면 좋으련만. 봄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다.
봄비를 주관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광활한 우주를 거느린 하느님이다. 지난겨울은 유난스럽게 춥지도 눈이 많이 내리지도 않았다. 기후변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겨울이 소리소문 없이 지나가고 봄이 다가왔다.
봄비가 많이 오기를 바라는데 봄비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지를 적실 정도만 내리고 만다. 그리고는 비구름을 데리고 일찌감치 저 멀리 달아났다.
봄비가 내리자 대기는 쌀쌀한데 외출하기에는 좋은 날씨다. 미세먼지가 사라지자 공기도 맑아졌다. 날씨가 따듯해지자 사무실의 지도박물관을 관람하러 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 아이들이 놀고 있는 주변의 나무를 바라보니 연초록의 새싹이 푸릇푸릇 솟아난다. 푸른 새싹의 청초함이 아이들의 앙증맞은 목소리와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는 날이다.
봄비가 내린 이튿날 아내와 함께 사무실 뒤편의 텃밭에서 비닐을 씌웠다. 지난주에 감자를 심었는데 싹이 트기 전에 동파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호미로 고랑을 만들어 비닐을 씌워보는 것도 아득한 기억 저편의 일이다. 지난 시절 비닐을 씌워본 경험은 몸에 배어있지만, 일은 일인지라 몸을 좀 움직이자 땀방울이 배어난다.
텃밭이라야 얼마 되지 않지만,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둘이 하다 보니 조금은 수월하다. 텃밭에 일하러 나온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땀을 흘리자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텃밭도 농사라고 마음은 벌써 김칫국이다. 감자 외에 상추, 고추, 깻잎, 대파, 쪽파, 고추 등 온갖 것을 심어서 먹자고 한다.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이것저것 심어서 기르자는 지청구가 쏟아진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텃밭을 가꾸는 것도 처음이다. 시골에서는 부모님 농사를 도와주는 보조역할이었지만 텃밭은 내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시골에서 부모님 일을 거들어본 경험과 텃밭 주변 사람의 지청구를 들어가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내가 무언가를 심고자 하면 “그것은 된다, 안 된다, 이르다, 늦다” 등 다양한 참견과 말들이 따라온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이웃 아저씨의 의견을 들어가며 농사를 짓던 방식과 똑같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계획과 일지까지 써가며 텃밭을 가꾸고 싶지는 않다. 텃밭이야 잘 돼도 그만이고, 안 돼도 그만이다.
텃밭 농사를 망친다고 먹고살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수확물이 많다고 가정 형편을 보태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텃밭을 관리하는 것은 즐겁게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다.
농사는 누가 뭐라 하든 말든 간섭을 하든 하지 않든 그저 자기 방식대로 지으면 그만이다. 또한 텃밭은 직접 해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경작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 많은 차이가 난다.
텃밭이 아무리 작아도 농작물을 키우려면 정성과 땀을 흘려야 한다. 밭의 흙을 갈아엎고 퇴비와 비료도 주고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비닐을 씌우고 씨앗을 밭에 뿌리는 작업은 농사와 다를 바가 없다.
농사짓는 즐거움은 뿌린 씨앗에서 싹이 솟아오를 때다. 텃밭에서 고추나 채소가 싹이 나와 자라면 신비함과 경외감이 생긴다. 마치 태어난 아기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그런 모습이 신기해서 텃밭에 자주 오고 싹이 제대로 자라는지 고라니 같은 짐승이 들어오지 않는지 걱정하며 돌보게 된다. 텃밭에 채소가 싹이 트면 몸과 마음은 바빠진다.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주변의 잡다한 것이 대들지 못하도록 깨끗하게 청소하듯이 텃밭에 채소가 자라면 잡초 제거에 열과 성을 기울여야 한다.
텃밭에서 아내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비닐을 씌웠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와 집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 어제 가랑비가 내려서 텃밭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은 수월했다.
비가 텃밭에 수분을 공급해 주어 마른 흙으로 비닐을 씌우지 않아서 다행이다. 올해는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 질 것 같다. 텃밭에 비닐을 씌워 놓았으니 앞으로 고추나 상추 등 모종을 심어야 한다.
모처럼 휴일에 아내와 함께 텃밭에 나와 흙을 일구고 비닐을 씌웠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지난 시절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서 농사를 거들며 보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