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렵은 냇가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물고기를 잡아 끓여 먹고 노는 것이다. 시골에서 여름이면 친구들과 족대를 어깨에 메고 솥에 양념을 넣어 냇가에 가서 솥을 걸어 놓고 물고기를 잡아 끓여 먹던 생각이 난다.
천렵은 다리 밑이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가 강렬한 햇빛을 피할 수가 있어 장소로는 제격이다. 어제는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 모여 만든 반 모임에 갔다 왔다.
반 모임은 여름의 무더위를 건강하게 잘 견뎌내라고 백곡저수지 제방 밑에 자리한 잔디밭에서 했다. 그곳에서 옛 시절을 떠올리며 물고기를 사다 천렵처럼 흉내를 냈다.
친구들과 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을 시간이 없어 반 모임의 총무가 민물고기와 삼겹살을 준비해 왔다. 백곡저수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자주 소풍을 왔던 곳이다.
당시 진천 읍내에서 저수지로 오는 황톳길에는 미루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자랐고, 저수지로 들어오는 오솔길에는 휘휘 늘어진 능수버들과 저수지 밑에 조성된 잔디밭은 멋진 낭만의 장소였다.
지금은 고목의 미루나무와 플라타너스와 능수버들이 모두 사라졌다. 황톳길도 아스팔트로 포장된 검은 길로 변해 낭만이란 글자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다.
그간 타지에 살면서 고향이 진천이라고 하면 살기 좋은 곳 아니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사람이 살기 좋다는 것은 비가 많이 내려도 홍수 피해가 적게 나고, 눈이 많이 내려도 눈 피해를 받지 않는 곳이다.
진천은 백곡저수지 덕분에 가뭄과 홍수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친구들과 나무 밑 그늘에 앉아 저수지를 올려다보니 녹색의 높은 제방 언덕이 한눈에 들어왔다.
백곡저수지는 80년대 초 저수지를 증축하기 전에는 동양에서 유일한 사이펀(한 다리는 길고 한 다리는 짧은 U자 모양의 관) 저수지로 유명했다.
사이펀이란 비가 많이 와서 저수지의 물이 차오르면 U자 모양으로 만든 콘크리트 모양의 길로 물을 방류하는 시설이다. 장마철에 사이펀으로 물을 방류하면 물이 용솟음치면서 우산처럼 솟아올랐다.
저수지를 증축하기 전에는 저수지에서 물을 방류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지금은 저수지를 증축하면서 사이펀 수로관이 수몰되어 사라지고 낚시터로 유명하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족구를 하는데 땀이 비가 오듯이 쏟아졌다. 몸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몸놀림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족구를 마치고 그늘에 앉아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살아가는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한 친구는 공직을 퇴직하기 전 공로연수 중이고, 다른 친구는 몸이 아파 명퇴를 하고 내달부터 강원도로 요양을 갈 예정이란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운동을 하다 몸을 다쳐 몹시 불편해 보였다. 나이가 들다 보니 성한 친구가 별로 없다. 하기야 내년이면 다들 회갑인데 몸인들 청춘 시절의 상태로 남아 있을까.
고등학교 반 모임 시간은 오전 10시인데 10시 반이 넘어서야 하나둘씩 나타났다. 친구들이 사는 장소도 광주, 부천, 서울, 진천 등 전국적이다. 먼 곳에 살면서도 학창 시절 친구가 그리워 연어처럼 달려온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회장이 민물고기를 끓이는 솥에 라면을 넣고 비린내를 제거한다며 소주를 부어 펄펄 끓였다. 친구들과 종이컵에 나무젓가락과 숟가락을 들고 회장이 솥에서 떠주는 찌개를 받아 들고 나무 밑 그늘에 가서 뜨끈한 찌개를 먹으며 점심을 해결했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학창 시절과 자녀와 건강 이야기 그리고 하반기에 외국으로 관광을 가자는 이야기들을 떠들썩하게 나누었다.
친구들과 천렵을 하는 족구장 옆 축구장에는 젊은 친구들이 태양 볕 아래서 공을 차고, 주변 잔디밭에는 진천 시내에 사는 가족들이 나들이를 와서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휴식을 즐기고 있다.
백곡수지는 예나 지금이나 진천에 사는 주민들에게 좋은 휴식처다. 학창 시절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만든 반 모임을 해온 지도 그럭저럭 삼십여 년이 되어간다.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친구도 있고, 더 어른이 된 친구도 있고, 머리가 하얗거나 대머리가 된 친구도 있다.
나이는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고 정석대로 제 갈 길을 가는 것 같다. 나이는 미풍의 바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이나 얼굴에 아니면 머리에 흔적을 남기며 고요히 쌓여간다.
고등학교 반 모임을 끝내고 음식물 쓰레기를 줍고 나서 다음 모임 때도 건강하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천렵을 끝냈다.
친구들과 헤어지려는데 백곡저수지 제방 위에서 학창 시절에 다가왔던 하늬바람이 청춘이란 풋풋한 그리움의 옛 노래를 부르면서 따뜻하게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