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노랫가락

by 이상역

요즈음 날씨가 더워서 방문과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낸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베란다 너머로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의 소나무와 그 너머로 학교를 비롯한 건물과 롯데타워 같은 빌딩이 어우러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직장을 퇴직하고 집에 머무르게 되자 생활이 단조로워졌다. 새벽에 천변에 나가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서 아침을 먹고 책상에 앉으면 매미 울음소리와 지나가는 차량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무언가를 끄적거리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간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다 다시 책상에 앉아 끄적거리거나 책을 읽다 보면 저녁이다.


집에 있다 보면 설거지나 청소나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어 건조대에 너는 일을 해야 한다. 집안의 소소한 일은 즉시 해결해야 한다. 집안일은 누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마주치는 사람이 즉시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아내가 잠시 쉬게 해 주었을 뿐이다. 집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그럭저럭 적응해 가고 자리도 잡아간다.


직장이란 보호막이 사라지자 핑계라는 언덕도 사라졌다. 이제는 가정에 오롯이 기대어 눈치껏 살아가야 한다. 직장에선 기관장이나 부서장 눈치를 보아가며 살아왔지만, 가정에선 아내가 곧 기관장이자 부서장이다.


직장은 기관장이나 부서장에게 잘못 보이면 혼이 나고 잘못하면 다른 부서로 쫓겨간다. 하지만 가정에선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아내에게 잘못 보이거나 잘못하면 혼나기만 할 뿐 집 밖으로 쫓겨날 염려는 없다.


아내가 남편이 밉다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집 밖으로 쫓아낼 수도 없고 미워도 미워하는 마음만 마음에 품고 있을 뿐 달리 어쩌지 못하는 곳이 가정이다.


그간 직장에서 기관장이나 부서장이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서를 작성했다. 직장에 근무하는 동안 기관장이나 부서장은 자주 바뀌었다. 그때마다 인수인계서를 만들어 보고했다.


인수인계서는 과나 국이나 기관에서 하는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일뿐 그것으로 업무의 양이나 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직장을 퇴직하자 인수인계서를 작성할 이유도 누군가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사라졌다.


직장의 일도 사람의 일인지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일할 때는 마음이 편하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직장에서 누구나 꺼리는 사람을 만나면 하루가 곧 가시방석이 되고 만다.


직장에서 업무도 사람과의 관계가 먼저다. 자신이 맡은 업무는 부서장의 호불호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업무의 양은 줄어들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업무의 양은 배로 늘어난다.


이제는 직장을 떠났으니 사람이나 일과 관련한 이런저런 걱정도 사라졌다. 오늘은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다.


여름은 매미의 계절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가로등이 24시간 켜져 있어 말매미 울음소리가 밤새도록 들려온다. 아침에 천변에 나가 걸어가면 귓가로는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와 풀벌레와 참매미 울음소리가 혼합해서 들려온다.


그중에 참매미 울음소리가 가장 도드라져 들려온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동이 트는 새벽에 참매미가 요란하게 울다가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참매미 울음소리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시냇물 소리와 풀벌레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귓전에 들려온다. 참매미 울음의 특성은 잘 모르겠지만 동이 트는 새벽녘에 우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새벽녘에 참매미가 도드라져 우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계절은 여름의 한가운데 들어섰음이 틀림없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계절에 땀이 난다고 집에서 에어컨을 켜는 것도 좀 그렇다.


바깥에 나가 움직이기만 하면 땀이 나고 무더워서 몸을 움직이기도 귀찮은 시절이다. 창밖의 더운 세상을 뒤로하고 방에 틀어박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간 직장을 퇴직하고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았지만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다. 나이가 들어 비정규직 일자리 구하는 것도 어려운 세상살이다.


이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도 힘들다. 직장을 퇴직하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몸만 남았고 그나마 몸이라도 움직여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도 없다.


변변찮은 일자리도 경쟁이 치열해서 자리를 얻는 것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 몇 번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알아보다 포기하고 책상에 앉아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먼발치로 바라보는 신세다.


창밖의 세상이나 구경하려고 하는데 참매미와 말매미 울음소리가 아침부터 방해를 놓는다. 매미 소리만 들려오지 않으면 세상은 참 조용할 것 같은데, 매미 울음소리 때문에 세상이 더워 보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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