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의 기억

by 이상역

지난 이틀 동안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나기가 ‘주룩주룩’ 내리지를 않고 하늘에서 마치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이 내렸다.


소나기로 사무실 텃밭의 채소가 걱정되어 피해가 없는지 살펴보러 나왔다. 사무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텃밭에 올라가 한 바퀴 돌아보니 비로 인한 피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 않다.


고추는 지지대와 함께 넘어지고, 방울토마토는 쓰러지기 직전이다. 텃밭 가장자리 옥수수는 잎과 수염이 하얗게 말라간다. 먼저 오이와 가지가 눈에 들어와 따고 옥수수도 익은 것 같아 비틀어 땄다.


웃자란 상추는 뽑아 산자락에 갖다 버리고 비트는 뽑아서 잎 부분은 잘라내고 뿌리만 비닐에 담았다. 쪽파는 텃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뒤늦게 심은 대파는 쓰러진 것은 먹기 위해 뽑았다.


집에 가져갈 채소를 대충 챙기고 쓰러지기 직전의 방울토마토는 지지대를 다시 반듯이 세워주고 줄로 묶었다. 텃밭에서 작업하는데 후덥지근해지면서 얼굴에 비지땀이 흘러내린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태양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날씨가 습하고 무더워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솟는다. 고추 지지대를 세워주고, 사방으로 뻗는 호박 넝쿨은 울타리를 타도록 정리했다.


며칠간 소나기로 텃밭을 관리하지 않았더니 풀이 무성하다. 텃밭에 나와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늘은 케일을 뽑아내려고 했는데 날씨가 무더워 미루었다.


텃밭 일을 마무리하고 나가려는데 애호박이 눈에 띄어 땄다. 텃밭에서 비트 뿌리와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호박 등 꽤 많은 것을 수확했다. 텃밭은 몇 평 안되는데 비닐봉지와 종이팩에 담긴 수확물을 바라보니 부자가 된 것 같다.


채소에 농약을 뿌리지 않았으니 보기만 해도 건강함이 느껴진다. 텃밭에서 이것저것 일을 할 때는 얼굴에 비지땀이 흐르는지 알지 못했다.


사무실에 내려와 채소를 씻으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땀에 얼룩진 얼굴을 찬물로 씻고 나자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사무실의 공기가 후덥지근하고 더운 기운이 불어온다.


여름에는 몸을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난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고향에서 건조실의 높은 달대에 올라가 담뱃잎을 역은 줄을 매던 일이 생각난다.


사방이 꽉 막힌 건조실 안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데 달대에 올라 담뱃잎을 엮은 줄을 맬 때면 온몸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담뱃잎을 엮은 줄을 매는 작업이 끝나면 곧바로 냇가에 뛰어들어 몸을 씻었다.


몸에 땀이 흐르면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현기증도 나고 정신도 몽롱하다.


일기예보에서 장맛비가 내릴지 모른다고 해서 걱정하고 나왔는데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아 텃밭 작업을 수월하게 마쳤다. 사무실에서 가져온 떡과 바나나와 귤을 먹으니 배고픔이 어느 정도 가셨다.


어젯밤엔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졌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고층이라 웬만한 빗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어제는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소나기가 ‘쏴아’, ‘쏴아’ 하면서 창문에 와서 부딪치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려왔다.


소나기가 거센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소리에 잠도 깊게 자지 못하고 선잠을 자다 새벽녘에 일어났다. 텃밭에서 일할 때면 이전에 고향에서 농사일을 돕던 경험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밭일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호미를 들고 풀을 뽑거나 고추 지지대를 세우거나 방울토마토 줄을 매는 작업은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텃밭에 나와 일할 때마다 이전 경험을 하나하나 꺼내어 사는 삶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 무더운 여름날 경운기를 끌고 산자락에 올라가 담뱃잎을 따서 지게에 지고 내려와 경운기에 싣고 고향 집으로 내려오던 시절이 생각난다.


여름날 담배밭에 들어가 담뱃잎을 따면 태양볕과 담뱃진 냄새와 비닐에서 올라오는 복사열로 머리는 지근지근하다. 담뱃잎을 지게에 지고 담배밭 가장자리로 내려와 경운기에 담뱃잎을 싣고 나면 온몸에 땀이 솟아났다.


고향에서 농사일을 도우던 추억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텃밭에서 흘린 땀은 고향의 담배밭에서 흘렸던 땀만은 못하지만, 몸에 땀이 송골송골 솟아날 때마다 지난 시절 땀방울을 떠올리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여름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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