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 엿보기

by 이상역

겨울에 차가운 사무실에 앉아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냉기가 몸을 감싸고 돌면 머리가 서늘해지고 마음에 긴장감이 들면서 가슴은 팽팽해진다.


그런 냉랭한 분위기에서 글을 읽으면 맑은 기운이 솟아난다. 게다가 작가와 작은 소통이라도 하는 날엔 책을 대하는 낯빛에 엷은 미소가 흐른다.


독서는 마음의 잔상을 잔잔하게 정리해 준다. 책상에 앉아 글 읽기에 몰입하면 주변에서 들려오던 번잡한 소리도 사라진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마음은 시간을 따라 한없이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간다.


사람들은 가을이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겨울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통해 만나는 무한한 사유의 바다. 여행에서 갈림길을 만나면 어떤 길을 갈까 고민하다 가야 할 길을 선택했을 때의 기분이랄까. 책 속의 글에 몰입하다 보면 가슴에 고통이 아니라 작은 희열이 생겨난다.


가끔 책을 읽다가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글이 있었나 하는 신비로움과 경이감을 경험한다. 책 속에 펼쳐진 무한한 사유의 바다에 마음이 푹 빠지면 머릿속은 더욱 명료해진다. 그리고 분주하고 산란했던 마음도 제 자리를 찾아가고 가슴 한 곳에는 고요가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는다.


겨울날 찬 공기가 도는 곳에서 독서에 집중하면 추위도 잡다한 생각도 사라진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연 몇 권의 책을 읽고 세상을 떠날까? 한 권의 책을 읽거나 만 권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독서는 사유의 뜰을 무한정 여행하는 신비한 경험과 마음에 청정심을 깃들게 한다. 자료실에 가서 책을 골라 서문을 읽으면 작가가 글을 쓴 동기와 세상에 내어놓은 사연을 접하게 된다.


저자가 쓴 책의 서문을 읽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일면 주저 없이 그 책을 집어 든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바와 비슷한 저자를 만나면 삶을 공유하는 느낌과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독서는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엿보기다. 그를 통해 넓은 세상도 만나고 보다 많은 삶의 지혜도 얻는다. 다른 세상을 여행하다 때때로 미적인 마음을 만나거나 신비한 경험을 겪거나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 인연도 맺는다.


세상에 태어나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다른 세상을 엿보며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진한 향기로 전해져 가슴에 스며들면 감동과 뿌듯함이 마음속에 자리한다. 그런 상태로 가슴속의 심연을 따라가면 생각이 하나둘씩 정리된다.


멋지고 아름다운 글을 접하면 나도 언젠가 책 속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은 옅은 욕심이 생겨나고, 나라 밖을 떠나 다른 나라나 유명한 산을 여행하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된다.


요즘 주로 읽는 것은, 사람이 체험한 삶을 산문이나 수필 형식으로 써 놓은 글들이다. 자신이 경험한 삶은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람은 홀로 모든 것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없듯이 다른 사람이 경험한 삶을 읽다 보면 그것이 내 것이라도 되는 양 마음이 시원해진다.


소설가나 시인이 쓴 산문도 좋고, 작가가 아닌 사람이라도 직접 여행하거나 체험한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글도 좋다. 글은 사람의 심연에서 끌어올린 정제된 마음이다. 작가는 가상의 세계나 자신이 경험한 것을 쓰기 위해 존재의 집을 짓는다.


작가가 아닌 사람도 살아온 삶을 그대로 표현하면 그 자체가 곧 존재의 집이다. 그런 글이 튼실한 집도 만들고 사상을 세운다. 글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과 마음을 때로는 받아들이고 때로는 버리기도 한다.


삶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의 그림자로 남듯이 책도 다 읽고 나면 기억이라는 저장고에 향기로운 기운과 여운으로 남는다.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사무실에서 저자와 마음을 소통하는 은밀한 즐거움. 둥지의 따듯한 공기를 뒤로하고 빈 사무실을 찾아와서 책을 읽는 소소함.


그저 내 남은 생애에도 좋아하는 책이나 읽으면서 삶의 영광과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keyword
이전 07화글짓는 설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