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by 이상역

길치란 방향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 길을 쉽게 잃거나 잘 찾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낯선 곳에 가면 누구나 방향을 잃어 길을 찾지 못한다.


최근 내비게이션 등장으로 차를 운전해서 낯선 곳에 가서 길을 잃거나 헤맬 염려는 없다. 내비게이션은 지도를 보여주고 지름길을 찾아 주는 기계장치이다.


내 차에는 고물 수준의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다. 내비게이션을 사서 단 계기는 언젠가 청주에 일이 있어 갔다가 서청주로 빠져나가기 위해 시내에서 한참을 헤매고 나서다.


청주에서 근 십여 년을 생활했던 터라 나름 시내 지리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십여 년 만에 청주를 갔더니 도로와 시내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차를 이용해서 가족과 여행을 가거나 고향에 갈 때면 막내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나는 차를 운전하고 갈 때는 내비게이션을 켜 놓고 가지만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치와 기억에 의존하는 편이다.


차를 운전하고 갈 때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지 않으면 막내는 내게 “아빠는 왜 내비게이션을 달아 놓았어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내가 “왜!”라고 응수하면, 막내는 “아빠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것과 반대로 가잖아요?”라고 대꾸한다. 막내에게 “내비게이션은 장식용이야. 아빠는 내비게이션을 믿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은 막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빠는 내비게이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안내하는 것과 반대로 가보는 거야.”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내비게이션은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새로 개통한 고속도로나 국도를 제대로 안내하지 못한다. 내비게이션도 자주 업데이트를 해주어야 한다.


근 십 년 전에 내비게이션을 사서 차에 매단 후 한 번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에 따라 차가 새로 개통한 길을 갈 때는 길을 안내하지 못해 고물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평소 어디를 갈 때는 미리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서 도로의 교통체계를 파악해 두고 출발한다. 고속도로는 어떤 IC를 이용해서 빠져나갈 것인지, 국도와 지방도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개략적인 것을 확인하고 목적지를 찾아간다.


그간 차에 매달린 고물이 다된 내비게이션과 반대로 운전하며 다닌 결과 몇 가지 특성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내비게이션이 길을 안내할 때 효율적으로 안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비게이션은 효율성보다 편리성을 추구한다. 물론 내비게이션만 믿고 운전해도 목적지는 찾아간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갈 때 주의해야 한다.


대전이나 대구나 전주와 같은 큰 도시는 IC가 서너 곳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분명 찾아가는 도시의 목적지를 효율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내비게이션은 첫 번째 나오는 IC로 진입하라고 고집한다.


두 번째는 내비게이션이 평면과 입체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은 제대로 안내하지 못한다. 내비게이션은 축적한 지도를 사용해서 평면과 입체 도로가 교차할 때 먹통 구간이 생긴다. 따라서 평면과 입체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안내하지 못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세 번째는 내비게이션은 외진 곳이나 유턴이 없는 구간에서 목적지를 지나치면 되돌아오는 길을 안내하지 못한다. 목적지가 반대편에 있으면 유턴하는 길을 안내하지만, 같은 방향의 목적지를 지나치면 먼 길을 돌아오도록 안내한다.


마지막은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미터 표시와 운전자가 느끼는 거리감이 상당히 다르다. 내비게이션이 표시하는 거리는 토지 필지의 가운데를 찍어 계산하는 방식이라 운전자가 느끼는 거리감과 다르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차에 매달린 내비게이션 특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운전하면 길을 효율적으로 찾아갈 수 있다. 최근에는 GPS를 이용한 내비게이션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특성은 사용을 해보지 않아 잘 모른다.


내 차에 매달린 내비게이션의 특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믿고 운전하지 않아 고물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내비게이션을 떼어 버릴 수도 없어 계륵처럼 달고 다니는 신세다.


요즈음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을 믿을 수 없어 낯선 곳을 찾아갈 때는 핸드폰의 티맵도 켜놓고 목적지를 찾아간다. 새로운 내비게이션을 달고 다니고 싶지만 아직은 이용할 가치가 남아 있어 사용하는 중이다.

차에 매달린 내비게이션은 길을 안내하는 기계장치다. 컴컴한 밤길에서 홀로 고독하게 운전할 때 가끔 고요를 깨트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면 반갑기도 하고 정신이 번쩍 들어 좋다.


비록 내 차에 매달린 내비게이션이 고물 수준이지만 그나마 그것에라도 의지해서 차를 운전하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그저 고맙고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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