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관리

by 이상역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이십 년이 되어간다. 그간 아버지 산소는 추석 전에 잔디를 깎아주는 벌초나 몇 해 전 형제들과 사초를 해준 것이 전부다.


산소도 해마다 벌초뿐만 아니라 풀도 뽑아내고 제초제도 뿌려가며 관리를 해야 한다. 올해는 마침 공로연수 기간이라 아버지 산소도 돌아볼 겸 고향을 찾아갔다.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도착해서 호미와 낫 등을 챙겨 들고 아버지 산소에 올라갔다. 산소에 올라가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산소는 후손이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잔디가 푸릇하게 자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명절이 아닌 날에 아버지 산소에 올라와본다. 아버지 산소는 봉분과 봉분 아래 잔디는 그런대로 잘 자랐는데 봉분 위와 산소의 양 날개 부분은 잔디가 군데군데 죽어서 황토색 흙이 그대로 드러나 휑해 보인다.


게다가 풀과 삘기가 수북하게 자라서 뽑아내고 잔디도 조금 보강해주어야 할 것 같다. 아버지 산소 크기는 다른 산소보다 두 배 정도 크다.


아버지 산소를 한 바퀴 둘러보고 봉분 아래 평지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기 시작했다. 호미로 풀의 밑뿌리를 찍어 뽑는데 무릎이 아파오면서 몸에 땀이 난다.


산소의 풀과 삘기를 뽑아내는 일의 양을 가늠해 보니 이틀 정도 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봉분과 봉분 아래의 풀을 뽑아내고, 내일은 봉분 위와 산소의 양 날개 부분에 자란 풀과 삘기를 뽑기로 했다.


잔디와 함께 자란 풀을 손과 호미로 뽑아내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산소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는데 무릎이 아파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엉덩이를 잔디밭에 깔고 앉아 발을 쭉 뻗고 풀을 뽑았다.


한 시간 정도 풀을 뽑아내자 풀을 뽑아낸 자리가 깨끗해졌다. 그렇게 봉분과 봉분 아래의 풀을 뽑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풀을 뽑는 중간중간 어머니가 싸준 동동주를 한 잔씩 마셨다.


이튿날은 아침 식사를 하자마자 산소에 올라와 봉분 위와 산소의 양 날개 부분에 자란 풀과 삘기를 뽑기 시작했다. 삘기는 띠의 어린싹이다. 띠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아주 힘들다.


풀은 밑동을 바짝 움켜주고 호미로 캐거나 손으로 뽑아내면 그만이지만 띠는 밑뿌리가 사방으로 잔디처럼 쭉쭉 뻗어 있어 뽑기가 만만치 않다.


띠는 여러해살이고 뿌리가 갈래를 뻗고 자라서 완전히 제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손목의 힘을 이용해서 뽑거나 호미로 뿌리를 찍어가며 하나하나 뽑아냈다.


산소에서 띠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어제 풀을 뽑아내는 작업은 식은 죽 먹기였다. 띠의 뿌리를 뽑는 것은 마치 칡뿌리를 캐듯이 뿌리의 갈래를 찾아가며 뽑아내야 한다.


아버지 산소에서 풀과 띠를 뽑는 작업을 하면서 산소의 잔디가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소도 해마다 풀도 뽑아내고 제초제도 뿌려가며 관리해야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산소는 추석 전에 벌초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미를 들고 풀과 띠를 뽑는 일을 하다 보니 산소를 관리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운전하고 고속도로나 국도를 지나갈 때 산자락에 정갈한 산소를 종종 보아왔다. 그런 산소를 바라보며 산소가 잘 관리되어 있다고 생각만 했지 정작 아버지 산소 관리 문제에 대하여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산소의 풀과 띠를 뽑는 작업은 어제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을 하다가 고향집에 내려가 점심을 먹고 올라와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을 했다.


나름 산소의 풀과 띠를 뽑아냈지만, 띠의 밑뿌리는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아쉽다. 띠와 잡풀을 뽑고 산소를 둘러보니 뽑기 전보다 훨씬 깨끗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산소의 잔디도 봉분과 봉분 아래는 잘 자랐는데 봉분 위와 산소의 양 날개는 다시 와서 보완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산소를 찾아와 풀과 띠를 한 번 더 뽑아내고 제초제도 뿌려 주기로 했다.


아버지 산소가 깨끗해지자 마음도 밝아졌다. 산소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고향에서 제일 높은 시루봉을 바라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산소에서 연장을 챙겨 들고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지난 이틀간 아버지 산소의 풀과 띠를 뽑고 나자 몸이 성한 데가 없다. 고향집에 내려오자 어머니가 고생했다며 빈대떡을 부쳐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와 부엌에 앉아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여 마시고 나자 지난 이틀간의 피로와 노고가 막걸리와 함께 고향의 품 안으로 샤르륵 녹아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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