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낮의 온도가 여름처럼 30도를 웃돈다. 기상캐스터는 날씨가 너무 더우니 활동에 주의를 당부하고, 정부에서도 외출을 자제하고 물을 많이 마시라는 문자를 보낸다.
금년도 여름은 무더워질 것만 같다. 다음 주가 초복이다. 초복은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절기다. 초복을 기준으로 10일이 지나면 중복이고, 중복에서 20일이 지나면 말복이다.
초복부터 말복까지는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기간이다. 요즈음 아침마다 사무실 텃밭에 올라가 채소에 물도 주고 풀을 뽑아준다. 한낮에는 날씨가 더워 텃밭에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텃밭을 관리하다 보면 지난 시절 부모님 농사를 돕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부모님이 왜 여름철이면 이른 새벽에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오는 것인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텃밭에 올라와 풀도 뽑고 물을 주는 일을 하다 보니 그 시절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아침에 텃밭에서 풀을 뽑거나, 물을 주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고 태양이 뜨겁지 않아서 좋다.
아침에 텃밭에 올라와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아침에 한 시간은 한낮의 두세 시간 분량의 일을 할 수가 있다. 내가 관리하는 텃밭과 부모님이 농사짓던 규모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밭에 나와서 하는 일은 대동소이하다. 호미를 들고 김을 매거나 풀을 뽑거나 토마토 순을 치거나 비료를 주고 밭 주변의 무성한 풀을 낫으로 베어 내는 작업은 다를 것이 없다.
몸에는 아직도 지난 시절 부모님의 농사를 돕던 행동과 습관이 남아있다. 아버지는 밭에서 김을 매거나 풀을 뽑을 때는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끝장을 본다는 것은 풀을 뽑으려면 깨끗하게 뽑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그런 성격을 물려받은 것인지 텃밭을 관리하는데 밭 주변이 지저분해 보이면 그냥 둘 수가 없다. 어제는 텃밭에 들어가는 길 주변의 무성한 잡초를 뽑아냈다.
선 호미로 풀뿌리를 캐거나 뿌리 밑동을 싹둑 잘라 깨끗하게 정리했다. 한 이십여 분간 일을 했더니 텃밭으로 들어가는 길이 훤해졌다. 한동안 손에 호미나 삽을 들고 일을 하지 않다가 일을 하면 손가락이나 손바닥에 물집이 생긴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손에 물집이 생기는지 모르다가 일을 끝내고 손을 살펴보면 손바닥이나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 있거나 물집이 터져 쓰라리다. 내 손에만 물집이 생기는 것인지 피부가 약한 것 같다.
이번에도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갑자기 하자 손바닥에 물집이 터져 살가죽이 벗겨졌다. 텃밭 일을 끝내고 사무실에 내려와서 수돗물에 손을 씻는데 그곳이 쓰라려서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텃밭 관리는 하지 않아도 그만인데 손에 물집까지 잡혀가며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손바닥에 밴드를 붙이고 시간이 지나면 굳은살이 솟아날 것이다. 피부도 한번 벗겨진 곳에 새 살이 돋아나면 이후로는 그곳에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
오늘은 텃밭에 올라가 풀을 뽑으면서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농사와 관련된 것은 지난 시절 몸에 형성된 그림자와 습관과 행동을 벗어날 수가 없다.
삶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성되듯이 농사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몸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텃밭을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텃밭을 아무리 과학적이고 기계로 관리한다고 해도 이전에 농사와 관련한 습관과 행동은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과거에 굳어진 굳은살의 흔적을 다시 만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지금은 사무실에서 텃밭이 자리한 광교산을 올려다보는 중이다. 그러자 아침에 떠오른 밝은 햇살이 사무실과 광교산을 비춰주면서 인사를 건넨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보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