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地籍)과 인연

by 이상역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란 말이 있다. 인연이 있다면, 천리 멀리에 떨어져 있어도 만난다는 뜻이다.


인연이란 말에는 왠지 모를 살가움과 삶의 고락을 나누는 친밀한 뜻을 품고 있는 듯하다. 대학에 들어가 어쩌다 인연을 맺은 것이 地籍이다. 地籍하면 왠지 낯선 듯 하지만 본래 토지라는 바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사람과 사물과 자연과 서로 연을 맺으며 공생하는 삶이 존재한다. 왜 인연이란 말에 地籍을 빗대어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사람과 지적과의 관계를 찾아보고 인생의 그림자를 연계시켜 보려는 의도에서다. 그렇다고 地籍과 억지로 동행하는 인연의 고리를 만들기는 싫다. 그럴만한 능력도 재주도 없다.


土地란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삶의 애환을 누리다가 생명이 다하는 날 다시 돌아가는 곳이다. 地籍이란 토지의 생성과 소멸을 다루며 그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와 역사를 기록하는 일종의 기록물이다.


토지를 잘 다스리고 기록으로 관리하는 나라는 선진국이고, 토지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스리는 나라는 소위 후진국이라 부른다.


토지와 사람과의 관계를 기록한 것이 地籍이라면 사람의 생성과 소멸을 기록한 것은 戶籍이다. 토지는 영원불변한 대상이고 사람은 생명이 다하면 소멸하는 유한한 존재다.


이처럼 지적과 호적은 대상과 주체가 서로 다르다. 지적은 토지에 허상의 선을 그어 경계를 다루지만, 호적은 사람이 태어나고 소멸한 것을 기록하여 사람을 법적으로 탄생시키고 소멸하게 하는 바탕이다.


지적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는 땅 넓이(地積), 두 번째는 토지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등록하여 놓은 기록(地籍), 세 번째는 어떤 사물을 꼭 집어서 가리키거나 허물 따위를 곧바로 집어내어 말함(指摘), 그리고 네 번째는 지식이나 지성에 관한 것(知的)으로 풀이되어 있다.


지적(地籍)에 대한 원래의 뜻을 알려면 한자의 음과 훈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지적(地籍)이란 사전적 정의처럼 토지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등록하여 놓은 기록을 말한다.


토지는 본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셀 수는 없으나, 토지가 소유나 거래의 대상이 되려면 인위적으로 선을 그어 구분하고, 그 구분된 토지의 위치나 형질이나 소유의 관계를 기록한 것이 지적(地籍)이다.


지적(地籍)이란 단어와 첫 대면을 한 것은 대학에 다닐 때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게 지적은 그리 생소한 단어는 아니다.


논과 밭 등을 측량해서 장부에 기재하고 관리하는 것은 농사짓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 농사를 돕던 시절에 어렴풋이 알던 지적(地籍)을 대학에 가서 학문으로 배우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에서 地籍을 배우고 졸업하면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 인연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구한 직업은 地籍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부 조직이 개편되면서 地籍업무가 지금 근무하는 부서로 넘어왔다. 지적(地籍)과 관련한 조직과 업무와 사람이 넘어오자 대학 시절에 인연을 맺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십 대 중반에 만났던 사람을 근 이십 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세상의 일이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젊은 시절 멋모르고 地籍이란 단어와 인연을 맺고 살아온 지 그럭저럭 강산이 몇 번은 바뀌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다시 대학에 다니는 기분이 든다.


그동안 地籍이 얼마나 달라졌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라곤 사람의 얼굴만 달라졌을 뿐 본래의 지적은 그리 변한 것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 지적을 만난 것이 우연이라면 그 우연을 버리고 다시 우연을 가장해서 옛날과 다른 멋쩍은 地籍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나이를 먹었지만, 이제는 서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지천명이 다되어 만난 지적과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동행하며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며 뿌리친 인연을 앞으로는 연인과 같은 마음으로 따듯하고 풋풋한 감정으로 대해야 한다.


앞으로 地籍과 어떤 인연을 맺으며 관계의 길을 찾아가게 될지는 모른다. 주변의 환경이 변했고 기술의 흐름도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간 살아온 삶의 물살도 밀물처럼 풍랑으로 떠밀려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일상생활에 가장 중요한 바탕은 토지다. 그 토지를 기반으로 관계를 맺고 삶의 뿌리를 내리는 것은 사람이다. 토지와 사람과의 만남이 필연이라면 사람과 地籍과의 만남은 우연이다.


그 필연과 우연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매듭짓고 푸는 것은 온전한 자신의 몫이다. 아마도 이러한 삶의 이치를 대학에 들어가 地籍을 접하면서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란 會者定離 철학까지 알게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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