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을 태운 비행기가 기수를 높이 치켜들며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퍼덕인다. 9박 10일의 해외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해방감과 무리 없이 여행을 마무리하게 해 준 것에 감사를 드린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리타국 머나먼 땅에서 단체로 여행을 즐겼다. 지난 열흘 동안 다섯 번의 비행기를 타는 인생의 신기록을 세우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호주의 따사로운 햇살이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넨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탑승을 위한 검사를 마치고 남극의 바람을 타고 계절을 거슬러 내가 떠나온 북반구를 향해 가는 중이다.
인생이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정거장이 아닐까. 여행지에서 만났던 새로운 얼굴은 어느새 익숙한 구면으로 변해 정이 듬뿍 들었다.
앞으로 일행과도 다시 이별해야 해야 한다. 배가 항구를 떠나면 떠나온 항구를 그리워하듯이 공항을 이륙하고 남극의 바람에 탑승하자 또 다른 만남이 그리워진다.
비행기가 브리즈번 공항을 이륙한 후 호주의 동북부 해안을 따라 헤엄을 쳐가듯 소리 없이 미끄러져 올라간다. 지금의 심정은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 되돌아가는 연어와 다를 바가 없다.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높이 솟구쳐 오를 때마다 귀가 먹먹해진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여행지에서 즐거웠던 일들이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행이 여행다운 것은 여행지에서 겪은 불편함과 짜증을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여행을 통해 겪었던 불편함과 짜증이 마음이라는 체에 걸러지자 아름다움이란 씨앗으로 남아 기억의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뉴질랜드에서 마주한 잊을 수 없는 녹색의 초원과 남섬에서 만난 만년설과 밀포드사운드에서 바라본 태초의 전설을 간직한 피오르드다.
그리고 호주 시드니에서 조각과도 같은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와 해안가 백사장이 백 리나 뻗어 있는 골드코스트 해변이다. 여행은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되새기는데 묘미가 있다.
몸이 피곤하면 보고 느낀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없지만, 몸이 여유로워지면 낯선 풍경도 익숙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태양이 비행기의 자유로운 유영을 도와주기라도 하듯이 구름을 걷어내고 밝은 햇살을 비추며 항로를 안내한다.
푸른 창공에서 보이지 않는 길과 방향을 읽어가며 북반구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여행이 마감이란 날짜에 가까워지면서 몸은 늘어지고 피곤해져 여행을 시작할 때 스스로 약속했던 것 모든 것을 지키지는 못했다.
뉴질랜드에서 초록의 여행을 끝내고 호주로 들어서면서 몸이 축 늘어지면서 서서히 지쳐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순간순간 느낀 감상을 비망록에 남기지 못했다.
어쨌든 이번 여행 기간에 봄과 여름과 가을을 동시에 겪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초록이 자라고 꽃이 만개하는 봄의 환상을 만끽했고, 호주에서는 여름이란 계절을 즐겼다. 그리고 지금은 낙엽이 지는 가을의 계절과 일상을 찾아가기 위해 창공을 날아가는 중이다.
여행은 해외를 가든 국내 여행을 가든 나라 안과 밖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디를 가든 땅 위에는 사람이 살아가고 건물이 들어서고 풀과 나무가 자라는 모습은 똑같다.
뉴질랜드에서 마주한 고사리 나무와 야자수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들이다. 어떤 것을 보고 나서 그리워하는 것은 그 대상 안에 잠재된 전설과 바람결에 나부끼는 이야기가 깃들어야 있어야 한다.
고사리 나무와 야자수는 이국의 낯선 만남일 뿐 지금까지 자라면서 만나지 못한 생경한 것이다. 그런 생경한 것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그저 낯선 나무라는 것과 이국적인 감정이 배어 있는 나무 그 자체다.
호주의 골드코스트 해안은 멋지고 아름다운 모래사장이지만 자라면서 보아왔던 해수욕장과는 비교할 수 없어 오히려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다. 비행기가 북반구를 향해 날아갈수록 지난 열흘 간의 행적이 서서히 멀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