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저녁 한 끼

by 이상역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젊은 사람들이 가족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직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녁을 가족과 함께 먹기를 소원하는 시대적 배경에는 ‘빨리빨리’라는 문화가 사라지고 여유를 선호하는 문화가 도래한 것을 의미한다.


일보다 가족이 먼저고 양보다는 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아버지 세대나 우리 세대는 개발논리와 빨리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 가족은 뒷전이고 직장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저녁은 당연히 직장에서 먹고 늦게까지 일을 했다. 과천에서 세종으로 내려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다 보니 이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 그립기만 하다.


세종에 근무하면서 제일 좋은 것은 무엇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공기가 맑아서 좋다. 또 건강에 신경을 쓸 시간이 많아 좋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건강에 신경을 쓸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세종에 내려와 홀로 떨어져 생활하다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졌다. 저녁에는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직장생활이라도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면 모르겠지만 세종이란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서두를 것도 별로 없다. 수도권은 사안이 생길 때마다 바쁘게 업무가 돌아갔는데 세종은 서울과 정보 접근성이나 지역적 거리감으로 인해 바쁘게 돌아가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퇴근해서 숙소인 원룸에 도착하면 딱히 할 것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하면서 시간을 마냥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간을 보내는 것도 취미를 살리면서 즐기면 좋은데 다른 사람과 어울려 즐길 대상도 놀이도 별로 없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저녁을 가족과 함께 먹는 직업을 선호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비록 돈은 적게 벌더라도 가족과 함께 소박하게 저녁을 즐긴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는 직장과 가정생활의 패턴이 바뀌어 가족 중심의 삶을 누리려는 것이다. 직장생활도 중요하지만, 직장은 근무시간에만 열심히 일하고 퇴근 이후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추세다.


선진국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4시면 퇴근한다. 그리고 저녁 7시면 하루가 마감되고 정리된다. 결과적으로 선진국에는 밤의 문화라는 것이 없다.


우리는 저녁에 퇴근해서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술 한 잔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선진국은 퇴근 후 동료들과 저녁을 먹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사전에 약속이 없으면 늘 가족과 함께 보낸다.


선진국은 저녁 시간 이후 거리에 나가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도 술을 마실 만한 곳도 별로 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저녁을 먹고 거리를 나가면 아직도 유혹하는 곳이 많다.


젊은이들이 가족과 저녁을 먹는 직업을 선호하는 것도 선진국으로 가는 현상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국민소득 수준이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굶지 않고 살만한 수준은 되지 않았을까.


우리도 선진국처럼 가족 중심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다행히도 요즘 젊은이들은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이나 교사나 경찰 등 칼퇴근이 가능한 곳에 직업을 구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그렇다고 이들 직업이 가족과 저녁을 먹는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법적인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 주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저녁을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자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다. 가정이 행복하면 직장의 일도 안정되고 사회도 안정된다.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하는 삶은 공공이나 민간이나 똑같이 보장할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한다. 이러한 권장은 국민의 소득 수준으로 이어지고 삶의 질도 높아지고 안정된 사회생활에 영향을 준다.


국민에게 저녁을 함께 먹을 권리를 보장해 줌으로써 누가 혜택을 받을까. 정답은 바로 국가라는 것이다. 한 가정의 행복은 사회적으로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국가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게 된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을 보장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직장에서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저녁을 먹는 것은 단순한 저녁 한 끼가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선진국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이 문화로 정착되었다. 이런 문화에서 타인과 저녁을 먹으려면 가족의 양해와 사전에 약속해야만 가능하다.


우리도 직장에서 퇴근 후 단체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문화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직장에서 단체로 저녁을 먹는데 함께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했다.


집에서 가족과 저녁을 먹는 것은 당연한 권리인데도 부서장이나 동료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이러한 문화는 권위적인 문화의 소산이다. 한 가정의 가장은 가정이나 조직이나 사회에서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직급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직장의 동료를 단체행동의 대상으로 인식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은 직장마다 직원이 저녁을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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