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걷는다

by 이상역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이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중 략) <이정하, '바람 속을 걷는 법'>


오늘도 바람 부는 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선다. 걷는 것은 뇌의 명령을 받은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가는 원초적인 행위다.


뇌의 명령을 받은 두 팔과 두 다리가 걷기에 들어서면 몸의 고행이 시작된다. 왼발 오른발 뇌의 명령에 따라 몸은 두 팔과 두 발을 교차시키며 앞을 향해 밀고 나간다.


두 팔과 두 발이 교차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몸과 마음은 서서히 세상을 향해 열려간다. 바람 속을 걸어가는 시인은 걸어가면서 동행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세상살이를 바람에 비유해서 걷는 행위를 시에 스며들게 했다.


인생살이가 바람에 의지하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행위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나는 시인처럼 함께 걸어주는 이를 그리워하지 않고 오롯이 홀로 걷는 행위에 몰입하는 것을 좋아한다.


걷는 행위에 몰입하면 잠들었던 몸이 서서히 깨어나면서 눈의 시야도 넓어지고 마음의 문도 열려간다. 사람은 어떤 대상에 몰입하면 그 행위의 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빨려 들어가듯이 걸음걸이에 집중할수록 자신의 속뜰을 향해 끝없는 사유의 여행을 떠난다.


걷는 행위가 깊어갈수록 몸 안이 열리면서 천천히 몸 밖으로 향한다. 그에 따라 귓전에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와 바람소리와 매미 우는 소리 그리고 하늘에서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 등 잡다한 소리가 들려온다.


요즈음 하루를 걷는 것으로 시작해서 걷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걷는 것은 나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움직이게 하고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근원적인 움직임이다.


몸을 움직여 어딘가를 향해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생명의 뿌리를 넘어 존재가 욕망하는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걷기를 해오고 있다.


종종 아침에 일어나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싫을 때도 있고 걷는 것이 귀찮아질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에 채찍을 들어 회초리를 가한다.


내가 살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걷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벌떡 일어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걷는 행위는 산사의 스님이 수행하는 것처럼 내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다. 걷는 행위에 몰입할수록 발걸음에 무게감이 실리고 입은 무거워지고 시선은 앞으로 고정되고 생각은 한 곳에 머물게 된다.


오른발 왼발 두 다리와 팔에 힘을 실어 걸음걸이를 옮기면 다른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롯이 걷는 행위에 몰입한다. 그렇게 상념을 털어내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하나둘씩 흘러내린다.


몸에서 땀이 솟는 것은 걷는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걷는 행위를 통해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몸 안의 에너지를 자양분으로 변화시킨 결과물이다.


걷는 행위의 몰입을 통해 몸 밖으로 생각이 열리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마음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간다. 몸에서 나는 땀은 단순한 땀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과 마음을 태동하는 근원이다.


걷는 행위가 짙어갈수록 뇌는 새로운 상념을 갖는다. 첫걸음에서 생각했던 번잡한 일들은 걸음걸이가 깊어지면서 사라지고 새로운 생각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간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생각하면 마음을 정리하는 힘이 약하지만 걸어가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해결책이나 돌파구를 찾게 되고 하나의 접점에 다다르게 된다.


아침에 걷는 것이 참 좋다. 게다가 잔잔한 미풍의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아침에 걷기를 하면 몸의 덜 깬 잠을 깨우고 마음을 정화시켜서 좋다.


여행의 첫날이 좋듯이 하루의 첫 기분은 걷기를 하고 나면 여유로워진다. 걷기에 대한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걷기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짐하게 한다.


아마도 그런 생각이 모여 하루를 정리하고 돌아보게 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 같다. 나는 홀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걷기는 생각과 마음을 집중할 수 없어서다.


나도 시인처럼 걷기를 통해 동행하는 사람이나 바람에 몸을 맡기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비록 그런 삶이 어떠한 가치를 부여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고 그 바람에 몸을 맡기며 부유하는 소소한 삶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