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길

by 이상역

공직이란 꼬리표를 달고 근무한 곳이 꽤 된다. 진천군, 법무부, 국방부, 교육부, 국토부 등에서 근무를 해보았다. 진천군은 지방직으로 나머지는 국가직으로 시험과 인사교류로 얻은 명함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면 아는 사람이 적다. 마찬가지로 직장을 자주 옮겨도 아는 사람이 적고 불이익을 받는다. 직장도 한 곳에 오래 근무해야 아는 사람이 많고, 조직에서 제대로 평가받는다.


공직의 신분이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바뀐 것은, 사표를 내고 다시 시험을 보고 얻은 것이다. 뒤늦게 국가직에 들어와 부처를 옮겨 다니다 보니 이제는 그럴 힘도 없다.


나이 들고 보니 신분을 바꾸는 것도, 시험을 다시 보는 것도, 부처를 옮기는 것도 힘들어졌다. 젊은 시절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직장에서 과를 옮기는 것조차 두렵다.


젊은 시절엔 낯선 환경과 사람을 만나면 신선함이 느껴지고 변화가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한두 살 먹다 보니 그간 알고 지내는 사람을 벗어나 새롭게 사람을 사귀는 것도 어려워졌다.


게다가 직장에서 인사로 자리를 옮겨도 업무에 적응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무실 환경은 변하는 것이 없는데 몸보다 마음이 환경에 앞서 저항한다.


어렵게 공부해서 총무처에 시험에 합격해 국방부에 첫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근무하다 인사교류로 교육부로 자리를 옮겼다.


국방부는 군인과 근무하는 사무실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교육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승진하는 시기를 놓쳤고, 결국 승진이 늦자 여파도 길어졌다.


얼마 전 국방부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를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였다. 입사 초기 허물없이 지내며 설악산 등산도 가고 이곳저곳 함께 놀러 다녔다. 그런데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옛 직장 동료는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내게 국방부로 다시 돌아오란다. 동료의 말을 듣고 대꾸하지 않았다. 이제와 돌아간들 무슨 이득과 혜택이 있을까.


나이 들어 원래의 부처로 자리를 이동하면 괜히 옮겼다며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면 어찌할 것인가. 이전에 근무했던 부처로 옮겨간들 좋은 것이 무엇일까? 그날 식당에서 동료의 말을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마음만 씁쓸해졌다.


젊은 시절 첫 직장에서 함께 한 동료는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첫 직장이고 나이도 비슷하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정이 끌려서가 아닐까.


어느덧 공직이란 길을 걷다 보니 삼십 년을 보냈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국민을 위해 남긴 업적은 별로 없지만 젊음과 인생을 바쳐 일하고 가정보다 더 많은 숨결을 나누며 보낸 곳이다.


그간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로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을 키우고 맞벌이하는 기간에 가정에 소홀했다는 자책감이 들어서다.


가정의 대소사를 아내에게 일임하고, 직장의 일에 너무 매달렸던 것 같다.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을 위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가정보다 직장을 고집부리며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철이 좀 덜 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맞벌이하던 시기에 아내는 눈 수술을 해야 했고 다니던 직장까지 사표 냈다.


누군가는 결혼 초기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유산해야 했던 죄책감을 평생을 사죄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지금은 내가 그 신세가 되었다. 요즘 서로 이견이 있으면 백전백패를 거듭한다.


인생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지만, 직장을 이동하지 않고 첫 근무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제적인 문제는 지금보다 나아졌을까. 아이들은 지금 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자랄 수 있었을까.


과거는 생각할수록 아쉽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다른 사람이 같은 조건이었다면 과연 어떤 것을 선택했을까?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시절을 회고하면 후회와 연민이 생긴다. 아무리 좋은 조건과 좋은 환경을 선택해서 살아간다 해도 미련은 남기 마련이다.


공직에서 자리를 자주 옮긴 결과 직장에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이곳저곳 근무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은 알게 되었다.


사람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채널은 되는 것 같다. 내 육신이 직장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녔듯이 영혼 또한 육신을 따라 전국을 유람하는 광영을 얻었다.


이제는 한 곳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고 영혼을 풍성하게 살 찌우고 싶다. 나의 육신아! 그동안 고생했다. 이 못난 영혼을 만나 여기저기 따라다닌 수고스러움이 먼 훗날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앞으로 과거를 가슴에 묻어두고 밝은 미래를 열어 아름다운 생을 누리고 싶다. 그 길에서 가끔 힘든 언덕을 만나면 극복하면서 생을 아우르며 가족을 보듬어 안고 살뜰하게 보살피며 살아가련다.


더불어 고향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친척들을 따스한 마음으로 보듬으며 아름다운 삶을 영유하고 싶다. 젊은 시절 멋모르고 선택한 공직이란 직업의 길.


공직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마무리는 아름답고 깨끗하게 하고 싶다.

젊은 날 내가 못다 이룬 꿈과 소망은 나중에 후손이 아름답게 완성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기간 따스함과 맑은 영혼을 간직하고 삶의 진한 향기를 피우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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