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애마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거리로 나섰다. 한적한 도로에 들어서자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과 저 멀리 산자락에서 수채화를 그려가는 초록의 빛깔과 희뿌연 잿빛 하늘이 시야로 들어온다.
도로에는 절대자를 간구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은 점으로, 길가의 가로수나 산을 수놓는 연초록은 하늘과 땅을 가르는 선으로 바라보인다. 그리고 점과 선 사이로 파란 하늘과 황토 흙은 자연의 밑바탕인 면을 이루었다.
점, 선, 면.
세상의 모든 물체는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네 삶 또한 세 요소를 벗어나지 못한다. 점에서 점 하나를 더하면 선이 되고, 선에서 선 하나를 더하면 면으로 바뀌는 세상. 반대로 면에서 면 하나를 덜어내면 선이 되고, 선에서 선 하나를 덜어내면 점이 되는 마술 같은 세상이다.
어느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더하면 ‘남’이 되는 세상사라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구조도 유행가의 가락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내 삶의 이정표는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따라 점과 선과 면을 통해 인생을 자꾸만 되돌아보게 한다.
무미건조하고 새로운 것 없는 날들에서 한 번쯤 떠올려보고 싶은 것이 그리움이다. 특히 봄이 무럭무럭 익어 가는 날이면 추억이라는 향수가 더욱 생각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이란 철학적 물음에 깊이를 더해가지만, 아직도 나는 점과 선과 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틀에 고정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신세다.
삶에는 오늘과 내일이란 명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고향을 떠나 타관을 떠돌며 살아가다 삶의 구조에서 점이 사라지거나 선이 사라지거나 면이 사라지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나기 싫어하던 사람을 만나는 그런 우연처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이치다. 인생을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듯이 내가 맺은 인연 또한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자 숙명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에 뚜렷하게 남겨놓은 것은 없지만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대학 시절에 배운 가브리엘 마르셀의 만남의 철학처럼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고 헤어진다.
삶에서 만나는 점이나 선이나 면이란 낱말과 말들 속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인생은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게 되는 자의 입장에 따라 그간 쌓아온 업보가 다르듯이 추억도 직접이냐 간접이냐에 따라 강도와 느낌이 달라진다.
직장의 인사로 근무부서가 바뀌면서 낯선 낱말과 말들에 휘둘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삶은 누군가가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한 만남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오늘따라 의미의 깃발을 내세우며 다가오는 그리움이란 단어가 가슴속을 헤집고 들어온다. 어느 한 자리에 마음을 기댈 곳 없는 외로운 삶이지만 스쳐 가는 우연의 연속이 마음의 갈피를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봄날의 화무십일홍이 사라진 것처럼 목련과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화려한 봄소식을 전하고는 이내 사그라졌다. 아름다움에는 늘 추함이 뒤따른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함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공생하는 관계다. 이들은 똑같이 태어났다 사라지는 동반자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함이 받쳐줄 때 아름다움이 더욱 빛난다. 반대로 추함은 아름다움이 받쳐줄 때 더 추한 것이 드러난다.
봄소식을 화사하게 전해주던 목련꽃이 되바라진 모습으로 추락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화무십일홍이란 말에는 추함과 퇴락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우아하고 함초롬히 핀 목련꽃이 하룻밤 사이에 꽃잎을 활짝 뒤로 젖히고 자신의 속내를 훤히 열어 보이며 대지를 향해 꽃잎을 떨구었다.
봄의 전령인 화려한 꽃 잔치가 사라지자 자연의 점과 선과 면이 한층 뚜렷해졌다. 점이 모여 선을 이루는 것처럼 사람들은 산과 들을 찾아 초록 위에 빛깔을 입히고, 선은 초록을 성장시켜 부지런히 면을 가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점은 아무리 많아도 선의 일부일 뿐이고, 선 또한 아무리 많아도 면의 부분이다. 우리네 인생도 점이 선과 면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흉내를 내며 살아간다지만 언제나 점과 선과 면에 머물러 존재할 뿐이다.
봄꽃이 범람하는 계절이다.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무리를 지은 철쭉꽃과 시청 담벼락에 기대어 수줍게 핀 라일락꽃이 만개했다.
라일락꽃 피는 봄이 오면 서로 사랑하자던 봄. 이제는 봄이라는 설렘과 기다림을 지나 차분하게 점과 선과 면을 바라보는 계절이다.
연초록의 빛깔이 진해질수록 봄이 익어 가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잔인한 사월이 지나가면 계절의 여왕인 오월이 다가온다.
사람들은 여왕에 빗대서 왜 오월의 신록을 노래했을까. 아마도 뭇 생명을 찬미하기 위해 오월을 여왕처럼 호칭한 것은 아닐까.
오월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서 생명이 분출하는 계절이다. 녹색의 계절 오월이 되면 점과 선과 면은 더욱 선명하고 뚜렷해질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가르기 위해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점은 부지런히 선을 찾아 떠나야 하고, 선 또한 부지런히 면을 따라잡기 위해 바쁜 날들을 보내야 한다.
자연에도 점과 선과 면이 존재하듯이 사람에게도 점과 선과 면이 존재한다. 단지 점과 선과 면을 어떻게 마주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