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울타리에 노랗게 무리 지어 핀 개나리꽃이 소담스럽다. 춘분이 지나면서 개나리, 진달래, 목련의 꽃망울이 활짝 터지기 시작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자 매화와 산수유 꽃망울이 터지고 뒤를 이어 화려한 봄의 향연인 꽃 잔치가 한창이다.
노란 개나리꽃은 바라보면 볼수록 정갈함보다 산만한 모습이 오히려 친밀하게 다가온다. 개나리는 버드나무처럼 가지를 사방으로 쭉쭉 뻗어 넝쿨처럼 자란다.
마치 둥그런 철조망처럼 개나리 나뭇가지가 원을 그리며 엉금엉금 기어가듯 성장한다. 개나리꽃은 들녘에서 홀로 피어 있는 것보다 집 담벼락이나 울타리나 길가에 무리 지어 핀 것이 더 정겹다.
개나리꽃이 피기 시작하면 지난 시절 들녘으로 봄나물을 캐러 가면서 여동생들과 불렀던 ‘개나리 처녀’란 노랫가락이 떠오른다.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
종달새가 울어 울어 이팔청춘 봄이 가네
어허야 얼씨구 타는 가슴 요놈의 봄바람아
늘어진 버들가지 잡고서 탄식해도
낭군님 아니 오고 서산에 해 지네
‘개나리 처녀’는 따듯한 봄날에 우물가의 젊은 처자가 휘휘 늘어진 버들가지를 휘어잡고 낭군을 기다리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봄이 되면 처녀의 마음은 불어오는 바람에도 쓰러질 듯 유혹을 당한다. 종달새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재잘거리는 소리에 혹시나 낭군의 소식도 묻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우물가를 서성이다 하루의 해가 기운다는 노랫가락이다.
이 노랫말의 여백에는 개나리꽃에 마음을 빼앗긴 봄처녀의 애타심과 기다림이 들어있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 하지 않았던가.
개나리꽃은 봄을 알리는 계절의 분수령이자 상징이다. 봄에는 꽃들도 자연의 순환처럼 차례대로 피어난다.
먼저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피고 뒤를 이어 개나리꽃과 진달래가 그리고 목련과 벚꽃과 살구꽃이 순서대로 핀다.
젊은 시절 고향에서 부모님의 농사를 도와드릴 때다. 마을에서 개나리꽃이 피는 봄이 되면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관광버스를 타고 꽃놀이를 갔다 왔다.
매년 봄마다 꽃놀이를 가는 곳은 달랐지만, 봄날에 꽃놀이 가는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마음은 설렘과 기대감에 부푼다. 꽃놀이 가는 날이면 동네 입구는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마을 입구에서 선 버스에 오르면서 “누구네가 왔네, 오지 않았네.” 하는 말들과 "무언가를 깜빡 잊고 왔노라."며 집을 향해 다시 헐레벌떡 뛰어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버스 안은 시끌벅적했다.
꽃놀이 준비를 끝낸 버스가 마을 입구를 내려서면 버스 안은 조용해졌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법석을 떨다 버스가 출발한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버스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정적을 깨트렸다.
"꽃놀이 가는데 왜 이리 조용하냐."라면서 마을의 청년을 불러내어 노래를 시켜 흥을 돋웠다. 나도 몇 번 부모님과 함께 마을 어른들과 버스를 타고 꽃놀이 간 적이 있다.
버스 안에서 마을 어른에게 호출을 당할 때마다 부른 첫 노래가 개나리 처녀다. 개나리 처녀 노래를 목울대를 들썩이며 부르노라면 마을 어른 모두가 일어나서 춤을 추며 따라 불렀다.
어떤 놀이나 시작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신나는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면 이후에는 누가 노래를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른다.
개나리 처녀를 따라 부르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는 삶의 애환과 향수가 깃들어 있었다. 더불어 처녀 시절 시집오기 전 고향에서 즐겨보던 개나리꽃이 생각나서인지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아침 출근길에 광교산 여우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개나리 처녀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이 노래는 부르면 부를수록 개나리꽃과 함께 봄이 다가오는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가슴 한편에는 고향의 산자락에 핀 개나리꽃을 떠올리게 한다. 광교산 여우 길 주변에도 개나리꽃이 무리를 지어 노랗게 핀 모습이 시야로 들어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개나리꽃이 핀 것을 보지 못했는데 지난밤에 꽃이 만개하여 봄날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개나리꽃이 핀 여우 길을 걸어가며 개나리 처녀를 흥얼거리니 어느새 사무실 울타리다. 사무실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고산자 김정호 동상 계단 아래에도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 있다.
노란색으로 세상의 영광과 봄날을 호령하는 개나리꽃. 오늘은 아침부터 개나리꽃을 바라보며 개나리 처녀란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침의 문을 열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노란 꽃과 함께 삶을 진하게 물들이며 하루를 향기롭게 꽃 피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