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봄을 맞이한 횟수도 그럭저럭 육십여 회가 되어간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맞이하는 봄이지만 춘심은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
한참 성장하던 십 대 시절엔 봄이 오고 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나갔고, 청춘 시절에는 대학과 취업이란 그늘에 가려 봄이 나를 비껴갔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뒷바라지에 신경을 쓰다 보니 가는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그나마 봄을 제대로 맞이한 것은 지천명을 넘어서다. 지천명을 넘어서자 봄이 이전과는 색다르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왔고 이순이 되어가자 봄을 맞이하는 기분과 느낌이 더욱 또렷해졌다.
요즈음 산자락과 들녘에 핀 꽃을 바라보며 봄날의 흥겨운 정취에 취해 세월 가는 줄도 모른다. 耳順이 되어가자 그동안 두 어깨를 짓누르던 밥벌이를 구하거나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에서 벗어나자 주변의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지난 시절에 耳順이면 꼬부랑 할아버지 소리를 들었다. 따뜻한 봄날에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장기를 두면서 마을을 오고 가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일거리를 즐겼다.
하지만 요즈음은 누구에게 耳順이라고 하면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아직은 아저씨 소리를 듣는 것에 더 익숙한 나이다.
耳順이 되어 맞이하는 봄은 지난해맞이했던 봄과 전혀 다르다. 나이가 더해갈수록 봄은 완숙하게 익으며 물들어가는 것 같다.
지난해 봄에 즐기지 못한 것을 올해는 더욱 즐기며 음미하는 중이다. 게다가 나이 들어갈수록 봄이 되면 마음에 충만감이 높아만 간다.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차를 몰고 도로에 들어섰다. 도로 주변에 핀 꽃이 눈에 들어오자 기분이 환해지면서 무언가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고 올라온다.
이어서 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추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도로가 주변의 곳곳에 핀 울긋불긋한 철쭉과 영산홍을 지그시 바라보자 얼굴에도 화려한 색깔이 피어난다.
봄기운이 완연한 사월에 봄꽃이 피고 나무는 싹을 틔워 움틈을 노래한다. 무릇 생명의 아름다움은 탄생에서 비롯된다.
탄생에는 신비로움과 경외감이 깃든다. 봄에 피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에서 연초록 새싹이 자라면, 괴테의 말처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생겨난다.
봄은 사람의 마음에 충만함과 경외감을 느끼는 신비로운 계절이다. 耳順이 되어가는 나이에 새롭게 만난 봄날도 삶의 이것저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자식이란 꽃을 만나고 아이들이 태어나는 신비스러움을 보고 나자 봄이란 계절도 자식들의 탄생과 자람으로 다가온다.
하늘에 하얀 안개 같은 것이 잔뜩 끼었다. 하늘을 뿌옇게 가린 것이 미세먼지 인지 황사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날씨와 무관하게 산자락과 들녘에서 꽃은 피고 나무에서 새싹은 자란다. 그에 따라 봄날은 계절의 시계추를 따라 서서히 익어간다.
耳順의 나이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게 해 준 것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이 나이까지 직장에 적을 두고 출퇴근하는 것도 커다란 혜택이다.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에 임한다. 누군가 내게 삶의 의무감을 부여한 적은 없다. 그저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직장을 물러날 때까지는 성실하게 일할 생각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새롭고 특별한 봄날로 다가온다. 봄날의 정취는 직장생활을 하느냐와 하지 않느냐에 따라 느낌과 기분이 달라질 것이다.
내일도 그리고 모래도 오늘처럼 봄을 맞이하면서 가는 봄날을 노래하며 정겹게 살고 싶다. 오늘도 속절없이 지나가는 봄날이 서럽고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