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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y 27. 2024

영혼의 옛 그림자

오늘 아침 천변에 나가 운동 삼아 걷고 있는데 천변 옆 숲에서 소쩍새가 "소쩍소쩍"하며 울어 댔다. 소쩍새가 여음을 남기며 울어 댈 때는 마치 소쩍새 곁으로 다가와 달라고 부탁하는 소리로만 들려온다.


고향에서 해질 무렵 앞산에서  소쩍새가  "소쩍소쩍" 하고 우는 날이면 밤의 고요한 적막을 깨트렸는데 아침 새벽에 천변 숲에서 소쩍새가 울어대자 아침 고요를 깨트리며 동녘에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지금까지 소쩍새가 우는 고독한 소리만 들었을 뿐 소쩍새를 한 번도 적이 없는데 왜 소쩍새는 나를 천변의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라면서 "서쪽 서쪽" 하는 소리로 들려오는 것일까.


마치 소쩍새의 영혼에 이끌려 내 영혼이 새의 울음소리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는 것 같다. 사람에게 영혼이란 무엇일까. 소쩍새와 내 영혼은 무엇이 다를까.


영혼은 육체 속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무형의 실체이며 생물과 무생물에 깃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데 내 영혼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오늘 아침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영혼과 소쩍새 영혼이 서로 만나기라도 한 것일까. 갑자기 내 영혼은 지금쯤 어디에 머무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표가 앞선다.


세종에 사는 계약이 끝나서 주소를 서울 집으로 이전했다. 정부 24 사이트를 접속해서 전입신고 하고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아 출력을 해서 적잖이 놀랐다.


주민등록초본이 무려 4장이나 출력되어 무언가 잘못되었나 하고 들여다보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주민등록초본 4장을 펼쳐 놓고 주소 이전을 헤아려 보니 마지막 숫자가 39번이다.


주소를 이전한 내역을 훑어보니 세대주 변경, 도로명 주소, 행정구역 변경 외에 대부분 전입에 의한 것이다. 그중에 전입에 의한 이전만 28번이고 이사 다닌 횟수를 헤아려 보니 대략 24번은 되는 것 같다.


나는 세상에 왜 태어난 것일까. 이리저리 이사 다니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물론 직장이나 집 문제로 이사를 옮겨 다녔다지만 누구를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이사를 다니며 살아온 것일까.   


주민등록초본에 새겨진 글자를 바라보니 내 영혼이 지나온 그림자가 그대로 펼쳐진다. 고향에서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이사 한번 다니지 않고 살다가 결혼 후 근 1년에서 2년마다 주소를 옮겨 다녔다.


주소지를 옮겨 다닌 곳도 서울, 경기, 남, 대전, 세종이고, 경기도와 서울 그리고 세종과 서울은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내가 국가를 위해 대단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이리 많이 옮겨 다닌 것일까.


삶에 무슨 사연과 핑계가 그리 많아 이사를 자주 다닌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땅한  떠오르지 않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를 않는다.


지금에 와서 이것저것 생각해 봐도 의구심과 의혹만 가득하다. 세상을 이리저리 부유하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이루었을까. 주민등록초본을 들여다볼수록 정상이 아닌 이상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누구는 태어나서 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있는데 나는 한 곳이 아닌 초원의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하며 살아온 것일까.


내게 이사 다니며 살아가라고 시킨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아무리 헤아려도 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답을 찾지 못하니 반대로 이사 다니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 말에서 내려 자기가 지나온 길을 한참 동안 뒤돌아 본다고 한다. 행여 자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렸다가 영혼이 곁에 다가왔다 싶으면 다시 달려간다고 한다.


나도 인디언처럼 내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한 장소에서 여유를 주며 살아온 것일까. 이사를 자주 다녀 내 영혼이 과거 떠나온 곳 어디에 머무르며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내 영혼이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물러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소쩍새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울다 보니 자기 영혼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까.


어찌 보면 지금도 몸 따로 영혼 따로 움직이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 아침 천변 숲에서 내게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전해준 소쩍새에게 물어봐야겠다.


"소쩍새야! 너의 영혼은 어디에 두고 왔니?"라고 물으면 소쩍새는 어떻게 대답할까. "당신이나 알아서 잘 살아가슈, 당신은 지금 당신의 영혼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알기나 하슈."라고 되물을 것만 같다.


내 영혼아!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가 비록 소쩍새만도 못한 사람이지만 앞으로는 네가 나를 위해 기다리지 않도록 이사도 다니지 않고 참된 삶을 살아갈 테니 내게 시간 좀 주고 기다려줄 수 있겠니.


인디언은 자기 영혼이 뒤따라오도록 배려하기 위해 말에서 내려 기다린다지만 나는 영혼이 자기 집에 제대로 정착해서 머물 수 있도록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이사 다니지 않고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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