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쓸쓸함

by 이상역

어느덧 계절도 겨울을 향해 달려간다. 거리엔 낙엽이 춤을 추고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무림을 치며 무서리를 견뎌내고 있다.


가을날을 노래하는 날도 얼마 남지를 않았다. 가을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단풍도 결실의 풍성한 수확도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휑하니 사라져 간다.


어제는 핸드폰에 여동생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장이 올라왔다. 부고장을 보니 장례식장은 신촌에 소재한 대학병원이다. 지방이면 조문 가는 것을 생각해 보겠는데 서울이라 조문을 다녀왔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가다 2호선으로 갈아타서 이대역에서 내렸다. 이대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자 가을을 재촉이라도 하는 듯 날씨가 쌀쌀하게 느껴졌다. 모처럼 젊은이가 북적대는 신촌의 거리를 걸어본다.


이대역에서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가는데 걸어서 이십 분 정도 걸렸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호실을 찾아가자 조카가 입구를 지키며 부의금도 받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부의록에 이름을 적고 부의금을 내고 영정실로 들어섰다. 영정 앞에서 예를 갖춰 향을 피우고 반절하고 난 뒤 고인에게 두 번의 절을 올렸다. 그리고 상주와 맞절하고 제부와 인사하는 것으로 조문을 마쳤다.


나는 조문 갈 때 고인에게 절을 드리고 상주에게 별도로 말을 건네지 않는다. 상을 당한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같아서다. 그저 상주 얼굴 한번 마주 보고 인사하고 바로 나온다.


여동생 시어머니 조문을 마치고 여동생과 제부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사돈은 지병은 없었는데 한번 넘어지면서 병원에 다니다 감기에 걸리고 코로나까지 걸리면서 얼마 사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단다.


제부의 몸상태를 보니 좋지 않아 보였다. 돌아가신 안사돈은 올해 여든아홉 살이다. 여든아홉이면 살 만큼 사시가 돌아가신 것이라며 여동생과 제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늦가을은 계절도 쓸쓸하고 가까운 사람까지 돌아가시니 산다는 것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신촌을 와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결혼하고 막내 처남 대학 졸업식 때 한번 와보고 처음이다.


인생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란 생각이 든다. 결국에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삶인데 왜 그리 힘들게 살아가고 무엇이 그리도 바쁜 것인지 시간을 휘몰아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사람의 생명이 영원으로 돌아가는 것도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삶을 두고 왜 객기를 부리고 하찮은 것에 대하여 고집을 부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신경을 쓰며 사는 것일까.


여동생네도 결혼해서 대전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 갖은 고생을 하다 용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아간다. 결혼하고 이런저런 사연을 겪으며 사는 모습을 지금껏 보아왔다.


몇 해 전 조카를 결혼시켜 살림을 내보내고 둘째는 내년에 결혼시킬 예정이란다. 어떤 가정이나 비슷한 삶의 사연과 이야기를 안고 살아간다. 그중에 누가 고생하고 어렵게 살았다는 것은 비교할 수 없고 비슷비슷한 것이 삶이다.


시골에서 살다 결혼해서 서울에 올라와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서울은 올라오는 순간부터 고생이다. 특히 집에 대한 문제는 소설책 몇 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의 한과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내가 여동생네 사돈을 본 것은 여동생 바깥사돈 돌아가셨을 때와 조카 결혼식 때 본 것이 전부다. 세 번째는 영정사진을 본 것으로 만남을 대신했다.


장례식장은 첫날이라 그런지 썰렁하고 조문객도 별로 없었다. 늦가을의 쓸쓸함처럼 장례식장의 공기도 쓸쓸하고 조문을 오고 가사람들도 쓸쓸하게 바라보였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앞에 두고 나눌 대화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렇다고 조문객이 찾아오는데 종일 앉아서 상주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그저 돌아가신 분 잘 모셔드리고 다음에 보자는 말로 인사하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장례식장을 나오니 신촌의 하늘에 구름이 떠 있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더 쓸쓸하게 몰아간다.


장례식장을 찾아간 역순으로 이대역에서 2호선 전철을 타고 오다 5호선으로 갈아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에 직장인들 퇴근 전인데도 전철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삶은 어디를 가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바깥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고 영원으로 돌아간 사람의 죽음도 만난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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