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젤리아

by 이상역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자 바닥에 선혈처럼 분홍색 꽃잎이 낭자하다. 화분에서 자라는 아젤리아에서 분홍색 꽃이 활짝 필 때는 베란다에 꽃향기가 가득했다.


아젤리아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꽃을 피워댄다. 꽃송이가 차례로 피면서 분홍색 꽃송이를 오래도록 나뭇가지에 매달고 지낸다. 아젤리아 꽃은 질 때는 처량해 보이지만 꽃이 필 때는 바라볼수록 마음을 기쁘게 한다.


아젤리아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내가 사랑의 기쁨을 만난 지도 벌써 수년이 되어간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처음 분홍색 꽃을 피웠을 때는 영산홍인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아내가 영산홍도 진달래도 아닌 아젤리아란다.


아젤리아는 중국이 자생지인데 유럽에서 품종을 개량해서 유럽산 철쭉으로 불린다. 진달래꽃은 3월부터 4월에 피고, 영산홍은 진달래가 지고 난 뒤 5월에 피기 시작한다.


진달래와 영산홍의 좋은 점을 합쳤으니 아젤리아 꽃은 겨울부터 수개월을 베란다에서 피고 진다. 베란다에는 달리아와 군자란도 꽃을 피운다. 달리아와 군자란은 꽃이 피면 한 달도 되지 않아 지지만 아젤리아는 단계별로 나누어 피면서 수개월 동안 꽃을 볼 수가 있다.


계절은 어느덧 봄을 향해 성큼성큼 달려간다. 아젤리아는 봄을 맞이한 듯이 베란다에서 분홍색 꽃을 피우며 가족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아젤리아 꽃은 피었다가 지면서 흔적을 요란스럽게도 남긴다.


꽃잎과 이파리가 떨어질 때마다 빗자루로 쓸어대지만, 그 일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고 수개월을 지속해야 한다. 때로는 청소하기가 귀찮을 때는 나무에서 꽃잎이나 잎이 시들기 전에 빗자루로 털어 쓰레기통에 담아 버린다.


꽃은 바라볼 때는 무한한 즐거움을 주지만 꽃이 지면 즐거움보다는 귀찮은 쓰레기로 전락한다. 꽃과 쓰레기의 차이는 바라봄과 버림이다. 꽃을 바라보면 美가 탄생하지만, 꽃을 버리면 추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만큼 꽃에는 美와 추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美는 추가 받쳐줄 때 아름답고, 추는 美가 받쳐줄 때 더 추하게 돋보인다.


건조한 아파트에 꽃과 나무가 없으면 삭막하다. 그 삭막한 공간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은 꽃이다. 꽃은 어느 자리 어느 위치에 있어도 미와 추를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다.


꽃이 필 때는 사람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질 때는 사람에게 쓴웃음과 괴로움을 남긴다. 아젤리아 꽃말처럼 사랑의 기쁨은 아무렇게나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美를 동반한 곳에서 사랑으로 탄생한다.


우리 집에서 꽃을 보는 기쁨을 오래도록 누리게 해주는 것은 아젤리아다. 반대로 오랫동안 너저분하게 어지르는 것도 아젤리아다. 아젤리아는 미와 추 그리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주는 원천이자 사랑을 전해주는 기쁨의 꽃이다.


아침저녁으로 아젤리아 꽃을 만나지만, 나무에 대한 유래와 꽃말을 알고 나자 새롭게 다가온다. 사물은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게 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듯이 스치는 만남도 소중하게 여기고 간직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어깨를 스치는 짧은 만남에도 깊은 인연이 작용한다. 아젤리아를 처음 만난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저 저 홀로 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서 시든 꽃잎과 떨어진 잎을 빗자루로 쓸면서 만난 인연이 전부다.


앞으로는 아젤리아의 아름다운 꽃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꽃과 나뭇잎이 지고 난 뒤 버려지는 쓸쓸함과 꽃에 간직된 추억을 생각하며 존귀한 꽃으로 대해야겠다.


아젤리아가 베란다에서 겨우내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 날들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고, 꽃잎을 피운 열정은 사랑을 아무리 해줘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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