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9박 10일간 뉴질랜드와 호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곳에 가서 끌고 다닐 가방과 체류하며 입을 옷과 면도기 등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여행사에 뉴질랜드와 호주의 계절을 전화로 물어보니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니란다. 우리나라 가을보다 약간 따뜻하거나 추울 것이라며 잘 준비해서 가란다.
무슨 옷을 준비해서 가야 하나 출발 전부터 옷을 선택하는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여행 출발에 앞서 며칠 전부터 틈틈이 여행에 필요한 여권, 옷, 책, 카메라, 면도기 등은 미리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여행 출발 며칠 전에 여행지에서 쓸 용돈을 청사 내 농협에서 뉴질랜드와 호주 달러로 교환해 두었다.
여행은 출발하기에 앞서 기다리는 마음이 더 애간장을 태운다. 여행을 떠나는 출발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팽배해지다가 막상 출발하는 날이 되면 온갖 잡념이 사라진다.
그리고는 앞으로 여행지에 가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혹시라도 일행들과 떨어져 외국에서 외톨이 신세는 되지 않을까 하는 온갖 상념과 잡다한 생각이 들어찬다.
가방을 챙겨 들고 긴 여정의 공백을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아이들과 아내를 한 번씩 안아주었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여행은 지금의 자리를 일탈해서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가족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 맞은편에 가서 시내버스를 탔다. 가족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멀어져 갈수록 불안감은 상승한다. 그동안 집과 회사만 오가는 일상의 틀을 벗어나 낯선 곳에 가려니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하다.
시내버스를 타고 안양 범계역에서 내려 공항리무진 버스로 갈아탔다. 리무진 버스에 탑승하자 버스는 곧바로 인천공항을 향해 내달린다.
내 집을 떠나 낯선 신천지를 찾아가는 것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곳에 가면 나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는 무수한 시간이 기다린다.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일행과 함께 몸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야 한다. 마침내 공항리무진 버스가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속력이 빨라졌다.
나를 태우고 가는 버스가 무슨 인연으로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것일까. 앞으로 이와 같은 무수한 낯선 만남이 기다릴 것이다. 국내를 떠나 해외로 가는 낯선 이 마음. 그 마음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지금 차를 타고 가는 설레는 마음이 여행에서 되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이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리무진 버스 창문 밖에는 은빛을 일렁이며 바람에 춤을 추는 비닐하우스와 들녘에 누렇게 익어 가는 벼 이삭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군무를 춘다.
이번에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겪는 건축문화 체험은 가을날의 멋진 여행이 될 것 같다. 버스 창밖에 비치는 석양빛도 며칠 동안은 만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계절을 거슬러 가는 여행을 떠난다. 가을에서 봄을 향해 계절을 거슬러 가는 여행. 아마도 이곳에서 느꼈던 시차와 계절의 차이로 몸 고생은 할 것이다.
가을은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내 나라의 뿌연 스모그를 뒤로하고 맑은 공기를 찾아 멀리 떠나는 미지의 마음. 내 생애 처음으로 내 나라가 아닌 외국을 향해 먼 곳으로 가본다.
이번 여행의 의미를 더해주기 위해 여동생들이 마음의 짐을 잔뜩 보태주었다. 내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이 어찌 이리 빠르게 지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내 앞에는 늘 푸르고 젊음으로만 채워질 것 같았는데 왕성했던 청춘과 패기는 어딘가로 사라진 채 초라한 모습만이 해안의 연기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리무진 버스가 어느새 중동신도시에 들어섰다. 버스의 빠른 속력처럼 내 삶도 마치 고속도로를 따라 거침없이 달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명 타지 않은 버스에는 적막감이 흐르고 버스의 엔진소리는 허공을 향해 뜨거운 열기를 거침없이 토해낸다.
지구의 정반대인 남반구로, 계절은 가을에서 봄을 향해 가는 마음이 기분이 들떠 있다. 창문 밖 넓은 들녘에는 풍성한 곡식은 보이지 않고 아파트가 우뚝 들어섰다.
우리는 지금 먹는 것보다 잠을 자는 집을 짓기 위한 집착과 아집에 너무 매달려 있다. 하늘과 산자락이 만나는 지평선을 허락하지 않고 사람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한 바벨탑 쌓기에 너무 골몰해 있다.
들녘에서 트랙터를 이리저리 휘몰아가며 황금 들녘을 부지런히 누비는 농부의 모습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인천공항 가는 길목으로 들어섰다.
창문 밖 태양은 내가 탄 버스를 마중이라도 하듯이 계속 따라온다. 산자락과 산자락 사이에 들어선 수많은 아파트. 우리의 산하는 정녕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리무진 버스가 신공항 영업소를 막 통과했다.
지금의 내 신세는 나라의 어지러운 형국을 피해 마치 외국으로 도망가는 모습이다. 내가 국내를 떠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외국에서 되돌아올 때쯤이면 출발할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거나 더 악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버스가 공항영업소를 빠져나가자 뿌연 안개가 마중을 나왔다. 이어서 검고 짙푸른 바다가 거울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잔물결이 춤을 추며 사라져 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바다 위를 가로질러 가는 버스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느낌이다.
태양은 점점 붉은 노을의 흔적을 하늘에 남기며 서서히 이울어 간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검푸른 바다. 인간의 욕망을 끝없이 받아들이는 거친 바다.
인천의 서쪽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리무진 버스. 이번 여행이 내 삶을 돌아보고 인생을 살찌우는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아쉽기도 하고 반대로 즐겁기도 하다.
리무진 버스에서 내리면 비행기를 타고 11시간을 하늘을 가로질러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 태양이 버스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건너와 손을 흔들며 마중한다.
드디어 서해를 배경으로 들어선 웅장한 인천공항이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비록 하늘을 나는 갈매기는 보이지 않지만, 비행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너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리무진 버스에서 내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