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집과 직장을 시계추처럼 오고 가며 일상을 순환한다. 그런 삶의 질서에 잔잔한 변화를 주는 것은 출퇴근하는 교통수단이다.
가끔 자가용을 집에 두고 걸어서 전철을 이용해서 출퇴근한다. 전철을 이용해서 출퇴근하면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먼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걷는 시간이 생기고, 다음은 전철을 기다리거나 타고 가면서 책을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 직장을 오고 가면서 걷는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전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역사 난간에 기대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즐겁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좋은 것처럼, 나를 태우고 갈 전철을 기다리면 마음에 가벼운 설렘이 인다.
콘크리트 난간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으면 전철이 도착한다는 안내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른 아침부터 가쁜 숨을 토해내며 전철이 도착하면,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분주해진다.
잠시 후 전철이 사람들을 싣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는다. 책을 읽으며 주변을 바라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좌석에 앉아 신문을 읽는 사람, 이어폰을 듣는 사람, 교과서를 꺼내어 공부하는 학생, 내 옆에 서서 컴컴한 밖을 무심히 응시하는 사람 등 저마다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간다.
전철에 몸을 싣고 가면 머릿속에는 과학의 발전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전철은 시간관념이 뚜렷하다. 초를 다투며 일정한 시간마다 정해진 자기 길을 따라 사람을 실어 나른다.
매일같이 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전철의 움직임처럼 전철과 함께 생활하는 현대인의 고달프고 지친 모습이 덜컹거리는 선로의 마찰음에 반사되어 낱알처럼 튀어 오른다.
전철이 처음과 마지막 정거장을 순환하듯이 나도 집과 직장을 순환하며 살아가는 신세다. 전철이나 나나 순환하며 움직이는 것은 같은데 목적은 다르다.
전철은 사람을 실어 나르기 위해 처음과 마지막 정거장을 부지런히 오가지만, 나는 가족의 부양과 국가를 위한 책임감에 집과 직장을 오고 간다.
그런 오고 가는 시간에서 전철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만난다. 사람은 시간과 영원이란 사이를 순환하다가 사라진다. 사람이 사라지면 다른 사람이 들어와 순환하다 사라지고, 그 순환의 고리가 연결되어 인류라는 역사가 만들어진다.
전철이 자기 노선을 순환하는 것이 의무이듯이 나는 집과 직장을 오가며 사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도 만나고 전철도 만난다. 가끔 전철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반갑지만 잠시 뿐이다.
사람은 문명이 진화될수록 몸의 움직임은 현저히 줄어든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전철은 이용하기에는 편리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멀어지게 한다. 내가 집과 직장을 오고 가면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주 힘들다.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가족과 이웃과 직장 동료만 알고 지내려 할 뿐 함께 타고 가는 전철 내의 사람이나, 걸어가면서 마주치는 사람과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전철은 시점과 종점을 오고 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한 사람도 알지를 못한다. 나도 매일 무수한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지만 대부분 알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치며 살아간다.
마치 삶이 하늘의 뜬구름과 같이 세상을 둥둥 떠다니며 살아가는 형국이다. 하늘의 구름은 날마다 다른 구름이 날아와 머무르다 사라진다. 그런 구름을 바라보며 우리는 늘 어제와 똑같은 구름이 와서 머무른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이 전철을 타고 가면서 과학의 발전을 못 느끼듯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정을 못 느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기계에 예속되고 소외되고 고독해진다.
전철을 타고 가면 편리함보다 과학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기분이 든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려야 할 전절역을 안내하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제는 전철이란 과학의 문명을 벗어나 원시로 돌아가야 한다. 두 발로 터벅터벅 역사를 빠져나와 출근하는 사람들 무리에 섞이면 다시 일상의 순환에 들어선다.
과학이란 문명의 옷을 벗고 근원으로 돌아가야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몸의 뿌리인 두 다리로 발걸음을 한발 한발 앞을 향해 옮겨본다.
오른발 왼발 순서대로 발걸음을 옮겨가자 삶의 욕망과 의욕이 마구 솟아난다. 전철이 움직이려면 가쁜 숨을 뱉어내는 것처럼 나도 육신을 휘적휘적 움직이려니 들숨 날숨이 불규칙해진다.
전철이 선로를 따라 자신의 길을 순환하듯이 나는 삶의 길을 따라 두 다리로 터벅터벅 순환해야 한다.
전철이 두 선로를 바라보며 달려도 영원히 만날 수 없듯이 내 몸도 두 다리에 의지해서 아무리 먼 길을 걸어가도 영원히 만날 수가 없다. 그것이 전철과 내가 겪어야 할 삶이자 순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