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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의 쿼카 Jan 07. 2023

내가 가장 싫어하는 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쿼카에서 감정 뱀파이어로


해맑은 쿼카 

나의 대학교 때 별명은 쿼카였다.

한 장의 사진으로 동기들 사이에서 귀여운 쿼카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학교 3학년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도서관에서 내일 있을 교양 시험을 벼락치기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잠깐 벤치에 나왔다.

앉아서 소시지 빵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핸드폰도 안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소시지 빵의 맛에 감탄하며 먹고 있었다.


‘찰칵’


동기가 그런 내 모습을 멀리서 몰래 찍고 사진을 단톡방에서 공유해 주었는데,

아니... 영락없는 쿼카의 모습이었다.

그 뒤로 내 별명은 쿼카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로 알려진 그 쿼카 말이다. 그 별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귀엽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물을 닮은 것은 어쩌면 꽤나 유쾌하고 긍정적인 내 성격이 드러나서 인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쿼카에서 감정 뱀파이어로

감정 뱀파이어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인턴 3개월이 채 안 돼서 완전한 뱀파이어가 된 (구) 쿼카.


다음은 감정뱀파이어로 변한 내 모습이었다.


1. “진짜 개 힘들어”, “퇴사하고 싶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 “ 개 빡쳐“를 달고 살았다. 구사하는 언어의 질이 매우 떨어졌다.

2. 카톡 단톡방에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사라졌다. 친구들의 안부를 궁금해하지도, 듣지도 않았다.

3. 부모님의 회사생활은 어떠냐는 질문에 화를 내기만 했다.

“그런 걸 왜 묻냐고. 생각하기도 싫은데. 나 힘든 거 몰라서 물어봐?”

3. 내 인생의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회사를, 부서를, 사수를, 팀장을, 대학을, 집안 사정을, 그리고 내 인생 전반을 부정하고 불평했다.


변한 나의 모습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모든 것이 온전한 나의 책임임을 인정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누가 나보고 공장까지 출퇴근하라고 협박했나?

극단적으로, 내가 지금 월 200만 원 언저리 못 벌어오면 밥 한 끼 못 먹을 정도로 굶어 죽나?

그렇게 싫고 괴롭고 못 버티겠으면 퇴사하면 되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강요한 적 없었다. 다름 아닌 내 손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일하는 것은.


그런데 왜 난 피해자인 척 행세하며 징징대고 있는가.

감정 뱀파이어로 변한 내 모습이 말 그대로 혐오스러웠다.




60일간의 연락 두절

"얘들아, 내가 요새 많이 지치고 생각할 것도 많아서. 잠시 카톡방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게!"


친구, 동기들 단톡방에 남기고 두 달 동안 거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물론 SNS도 지웠다.


첫 주는 마음이 가벼웠다. 머리가 명료해지고 심플해지는 기분.

둘째 주부터는 쫌 고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으니까, 주말만 되면 그렇게 가던 사당역 근처 술집들도, 합정역 유명한 로스터리 카페들에도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끊었다.


철저하게 비워진 시간들에 무얼 채워 넣을지 고민하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읽다 보면 감정뱀파이어 모습을 깨끗이 지울 수 있는 묘안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싶었다.


그 60일 동안 20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책들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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