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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의 쿼카 Jan 02. 2023

함부로 일찍 잠에 들면 안 돼요.

내일 출근지를 알려주는 카톡을 못 볼 수도 있거든요.




“나 한계치야.

 평택 왔다 갔다 못해 먹겠어. 그냥 자취방 구할게. “


부모님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 회사생활 2.5개월 만에.


이석증 후유증인지 지하철을 타면 멀미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비행기 이륙 때처럼 귀가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리가 퉁퉁 부었다.


평소에는 종아리에 잘만 끼던 요가링이 퇴근하고 집 가면 들어가지 지도 않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리가 부으니 몸이 확실히 무겁다고 느껴졌다.


방… 한 달에 얼마라구요?

자취를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바로 부동산으로 달려가 평택역 근처 원룸들을 샅샅이 보고 왔다.


보증금 500에 월세는 40만 원인 곳이 딱이었다.


30만 원인 곳도 있었는데…

문 앞에서 “저… 이 방은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 하고 도망치듯 인사하고 나왔다.


인턴 월급 19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을 내면 150이 남는다.


월 40만 원 vs. 하루 왕복 4시간 반 중 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나의 시간과 체력을 위하여.


부동산 계약은 다음 주에 하기로 하고 난 신나게 오*의 집 어플을 다운받아서 신나게 ‘자취방 꾸미기’에 몰입했다. 방의 컨셉은 미니멀리즘이되, 포스터 등으로 포인트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주부터 주 2회는
서울의 공유오피스로 출근하세요



잘못 들었나 싶었다.


스마트 워킹. 고정된 사무실에서 벗어나 유연한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새로 도입한 제도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도 평택에서 자취방을 구하기 전이라 다행이었다.


‘돈 굳었다. 일주일에 3번만 힘들면 되지 뭐 “




주 2회가 매번 고정된 요일이라고는 말 안 했다


공유오피스에 출근하는 날들은 수시로 바뀌었다.


팀장님이 가시는 날이 바로

공유오피스 (서울)로 출근할 수 있는 날이었다.


나 혼자서가 아닌,

팀장님의 결정으로 팀 단위로 공유오피스에 출근할 수 있는 것이었다.


출근 전 날 밤 9시 20분 :


“까톡”

팀장님 : “내일은 공유오피스 가세요. 저도 갑니다 “

팀원 A : “저도 공유오피스 가겠습니다 “

팀원 B, C, D “저도 가겠습니다”의 답장이 이어졌다.


“앗. 네 알겠습니다. 저도 공유오피스로 가겠습니다”


내일 평택으로 가는 줄 알고 시무룩해 있었는데,

팀장님의 서울 출근 소식 카톡을 들으면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기뻐하며 나만의 작은 일탈을 했다.


평택 갈 때의 평소 취침 시간인 오후 10시 반이 아닌 12시 반에 잠들기.

선물 받은 2시간 동안 행복해하며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곤 했다.




문제는 서울로 출근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평택으로 바뀌었을 때였다.


서울로 출근하는 줄 알고 퇴근하고 대학동기들과 저녁 먹기로 했는데. 다 빠그라졌다.


평택에서 퇴근해서 서울로 가면 저녁 8시 반이 넘는다. 저녁 약속을 잡을 수가 없었다.


금요일 밤 술 약속이면 모를까.


깨달았다.


근무지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약속을 잡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


그리고 일상이 루틴하지 않으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거기다 내 mbti는 J이다. 계획형인 사람인데 계획한 걸 내 의지로 실행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스트레스받았겠는가.




자려고 누웠는데.


“까톡”


팀장님 : 저 내일 공유오피스 말고 평택 갑니다.

팀원 A, B, C, D : 넵! 넵. 넵~


‘아, 시x.‘


핸드폰을 베개에 던졌다가

한참을 씩씩대며,


핸드폰을 다시 찾아서 집어 들고

“넵. 저도 공장으로 가겠습니다”를 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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