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침대의 이불정리부터.
아침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다. 새벽 5시 45분에 겨우 침대밖으로 나왔다. 첫 알람은 5시 30분에 맞춰놓았지만. 32분, 34분, 37분, 40분 그리고… 마지노선인 45분. 45분에 일어나지 않으면 지하철 첫차를 놓쳐서 지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는 밤에 감아서 머리 감고 말리는 족히 20분은 세이브 했다. 간단하게 몸만 씻고 대충 옷을 주워 입고 첫차 6시 20 분행을 탄다. 앉으면 바로 잠은 안 와서 유튜브를 조금 보다가 15분 정도 지나면 스르르 잠이 온다. 유튜브는 그냥 알고리즘 흐름에 맡긴다.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1시간 45분을 더 가면 평택역에 도착한다.
아침을 이렇게 시작한 나날들의 나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대체 나는 왜 평택까지 와 있는 거지’ ‘개피곤해’ ‘집 가고 싶다’ 생각들은 내 머릿속을 끝까지 지배해 다른 분야의 생각들이 헤집고 들어올 틈조차 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초기에 나는 팀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심지어 사수와는 몇 번 큰 마찰이 있어 회의실에서 “저한테 왜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다음 날 점심식사 전에 “나가서 점심으로 울면 어때?”라고 말하며 낄낄댔던 그였다. 부정적인 사람에게 부정적인 사건들을 더 던져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당하는 기분이었다.
철저하게 고독하기 시작
60일간 철저하게 고독하기로 마음먹은 첫 주가 되었다. 비몽사몽으로 나갈 채비를 하던 와중 책장에 꽂혀있던 <타이탄의 도구들> 책이 눈에 띄었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백팩에 노트북, 충전기 등 각종 무거운 짐들에 책까지 얹으니 평소보다 더 무거웠다.
지하철 자리에 앉아 평상시처럼 유튜브를 보다가 가방을 열었다. 책을 꺼낼까 말까 고민을 했다. 그냥 눈감고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방 무거워진 거 억울해서라도 몇 장이라도 그냥 읽자’. 흔한 자기 계발서의 일종이겠거니 편하게 읽자고 마음먹었다. 저자 팀페리스가 쫓아다니면서 발견한 강인한 <타이탄>들의 도구가 무엇인지 작성한 글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풀어낸 책.
“매일 아침 잠자리를 정돈한다는 건 그날의 첫 번째 과업을 달성했다는 뜻입니다.
작지만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자존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일을 해내야겠다는 용기로 발전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무렵이 되면 아침에 끝마친 간단한 일 하나가 수많은 과업 완료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인생에서는 이런 사소한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 윌리엄 맥레이븐, 텍사스 대학교 졸업식 연설 중
책 저자에게도, 윌리엄 씨에게도 꽤 미안한 얘기겠지만.. 글을 읽자마자 ‘지x하네’ 싶었다. 고작 이불정리로 사람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게 참 어이가 없었다. ‘이런 얘기 쓸 거면 나도 책 썼지’. 뻔한 클리쉐. 책을 덮을까 하다가 잠도 깬 겸 그냥 마저 몇 장 더 읽었다.
저거, 참 꼴 보기 싫네
오후 6시에 퇴근. 집에 도착하니 8시 40분. 엄마의 “왔어?” 의 질문에 살갑게 답하는 날이 과연 올까. “엉. 아 힘드네.” 하고 내방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정리가 안 된 침구가 바로 내 시선에 꽂혔다. ‘아 꼴 보기 싫네’.
다음날. 어김없이 허둥지둥 준비하고 나가려다가 침구와 눈이 마주쳤다. 퇴근 후 저 이부자리 꼴을 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아져 있는 이불만 피고 출근길에 나섰다.
그리고 정확히 66일 후, 이불정리는 내 습관이 되었다.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침 이불정리는 반드시 하고 나간다. 그리고 예전보다 꽤나 아침에 긍정적이다. 내가 뭐라도 된 것마냥 의기양양한 정도는 아니지만,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불정리로 매일매일 웃으면서 ‘우와. 나에게 하루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일어나서 출근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날은 오기 힘들 것이다. 다만, 아침을 대하는 태도가 달리지니,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 또한 변했다.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는 바로 그 유명한 <습관>이 된다. 매사에 부정적이며 감정 뱀파이어였던 <극혐인간>인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 첫 단추가 바로 ‘이불정리’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멋대로 사소하다고 판단한 이불정리의 영향력이 말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에이, 뻔한 얘기 하네.’라고 생각이 드는 게 정상이다. 나 조차도 처음에 읽고 나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을 했다.
선택은 자유다. 스스로 실행력이 강하다면 어떻게든 해볼 테고, 이미 머릿속에 안 할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든 안 할 이유를 찾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