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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의 쿼카 Jan 12. 2023

쫌 괜찮아지려고 하면 세상은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얼얼하네


철저하게 고독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일어나면 이불정리, 출근길엔 책 읽기, 회사 출근해서는 일, 퇴근길 다시 책 읽기, 11시에 잠듦



루틴하게 살기 시작하면서 회사 업무에도 잘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함에도 하나도 못 알아듣던 기간은 넘겼다. 이제는 팀장님이 원하는 자료가 대충 어떤 내용과 형식인지, 그리고 그걸 채우려면 누구한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도 그려졌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반복적으로 고독해지다 보니 쉽게 쓸쓸해졌다. 상상 속의 핸드폰 진동을 느끼며 괜히 친구들 카톡이 와있나 수시로 체크해 봤다. 주말이면 가던 합정의 핫한 카페도, 한남동의 맛있는 브런치 가게들에도 발걸음을 끊었다. 집과 회사만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Mbti E형 인간이 I로 러닝 체인지 되는구나.



‘60일은 너무 길어. 한 달만 하더라도 혼자 생각하고 독서만 하기에 충분했지’. 마음대로 d-30을 d-0으로 바꾸려던 찰나였다. 쉽게 말해서 살만해진 것이다.



내 숨통이 트인 때를 세상은 어떻게 바로 알아차리는지. 기가 막히게 뒤통수를 후려쳐버린다.




우리 팀의 다른 과장이 날 불렀다. “수첩 갖고 와”. 원래도 부르시면 수첩 갖고 다니는데요. 흥.



그가 펜을 잡았다. 그리곤 자신의 **은행 다이어리를 펼쳐 갑자기 가로선과 세로선을 그렸다. 십자가인 줄 알았다. 그러곤 대학교와 회사를 적었다. “대학교와 회사의 차이가 뭔지 알아?”. 나도 바보가 아닌지라 그 질문의 의도가 뭔지는 안다. 대학교는 교육시스템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등교육기관이며, 회사는 영리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이라는 답안을 말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뭐라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냥 혼나야 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다가 그 공백이 너무 길 것 같아 “어....”라고 한 번 고민하는 척을 해보았다. “넌 대학생이 아니잖아. 여기는 회사잖아”.



결국 돌고 돌아 그의 요지는 회사를 다니는 나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적극적이지가 않고, 뭔가를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어보면 혼날 것 같아도, 내 표정이 쫌 안 좋더라도 계속 물어보고 그러란 말이야. 뭐 좀 해보려고 하고 그런 게 있어야지. 헝그리 정신이 없어. 공채로 안 들어오고 인턴으로 들어와서 그런가?” 그러곤 자신이 9년 전 공장에 출근했을 때 피눈물을 흘리며 겪었던 군기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악명 높았던 상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거론하기 시작했다. 정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닭똥 같은 눈물이 후드득 무릎에 떨어지더니, 이내 히끅대면서 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초등학생일 때 학원 빠져서 엄마한테 아주 심하게 혼났을 때, 주체 못 하게 우는 것처럼 말이다. 어깨가 바운스 되면서 나오는 오열.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이었다.



내가 우는 것에 당황하고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너도 상처받은 것 같으니 나도 그만 말할게. 오늘 회식하자. 내가 팀장님한테 말할게. 술 마시면서 다 푸는 거지 뭐.” 대화의 장은 긴급하게 마무리되었고, 30여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설마 회식을 하고 싶어서 나를 혼낼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눈물을 예상하고 회식에서 풀자는 말을 제안해 회식의 명분을 만든 것이라면 그는 무당집에 있어야 마땅하다.



나도 잘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도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도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나이가 띠동갑 이상 차이가 나고, 연차가 10년 넘게 차이가 나는데. 그가 생각한 신입의 태도와 내가 생각한 신입의 태도의 기준은 다른 게 당연한 거다. 이해는 하지만, 그의 말하는 방식은 참 날 아프게 했다.



회식 자리에서 내가 울었던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모습. 어쩌면 날 울려 한 건 했다는 식의 의기양양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은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왜 울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라며 걱정이 아닌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팀원들의 표정도. 마치 넷플릭스 다음 회차 스토리 전개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회식 자리에서 내가 원래 광분하며 달려드는 삼겹살을 네 점밖에 안 먹었다 이것들아.




거슬리는 말, 힘 빠지게 하는 말, 아프게 하는 말들. 그 사이사이에 빼꼼 나를 맞아주는 따뜻한 말들을 더 찾으려고 노력했다. 찾고 난 뒤 더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되새김질을 해서 말이다. 누가 내 신발에 몰래 압정을 넣어놔서, 그것도 모르고 나는 계속 신발을 신어서 아파하는 것 같은. 계속 예상하지 못한 채  밟아서 너무나도 아픈, 압정 같은 그런 말들이 있었다. 그 못된 것들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뺏어오고 싶었다. 그러면서, 아니 그랬기에 나는 한층 성장하고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성장통을 겪는 시간은 더디게 간다.



“더디 가는 시간을 잊기 위해서는 독서 이상의 방법은 없을 것이므로.”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시킨 고독의 시간은 그렇게 3개월, 5개월, 8개월, 1년이 되었다.


텅텅 비워져 인형들이 전세 냈던 내 책장엔 책들로 꽉 차서 더 이상 둘 데가 없어, 책상에까지 책으로 쌓여있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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