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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의 쿼카 Jan 21. 2023

다만 악에서 구하지 마소서

당신의 분노는 무기이다.


‘악’ 감정이 뭐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긴 ‘악’ 감정을 우선 샅샅이 뜯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선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악감정이 유발된 상황을 객관화된 시선으로 봐야 한다.




악감정을 초래하는 상황이 무엇인가

전날 출근지를 알려주는 것이 부당한 일이 아닌가? 고정된 근무지가 없어서 전날 밤까지 왜 불안하게 기다려야 하지?



팀 내에서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당연히 이를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회사를 떠나거나 팀을 떠나거나. 아쉽게도 오너가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사람들을 내보낼 순 없으니 말이다. (출생의 비밀로 사실 내가 오너가였다는... 상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이직할 곳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회사를 떠나는 건 너무 리스크가 컸다. 팀을 떠날 수밖에 없군.



상황을 단순화했다. 악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으니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긍정적이게 상황을 보지 않기로 했다. 악의 감정을 그대로 두었다.




이제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해 보면 된다.

나는 팀을 떠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모든 악의 에너지를 동원했다.


다시 말하면, 내 몸값을 키우는 데 총동원했다.


노트에 다음 문장을 네임펜으로 적었다. 연필로 그 밑에 계속해서 반복해서 썼다.



“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2인분은 해.
진짜 독해”

이 말을 들어야 한다. 반드시.



당일 회의는 무조건 야근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일 회의록 송부. 업무를 다 깔끔하게 해내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 잡무도 다 해낼 것. 싫더라도 싫은 티 절대 내지 않고 말이다. 가령, 회식 후 거하게 취한 사람들 택시 잡아드리기, 술자리에서 거슬리는 언행으로 열받게 해도 웃으면서 대처하기 등. 여기서 '거슬리는 언행'은 단어로 함축돼서 그렇지, 내 입으로 꺼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악감정에서 비롯되었다.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즉, 팀을 떠나기 위해서.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7가지 보고의 원칙>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등을 읽고 일상에 적용해보기도 했다. 헬스도 다니면서 체력을 키웠다.




일한 지 1년 6개월 때였다.


“너 연차에 그렇게까지 하는 애, 찾기 힘들어.”라는 말을 들었다. 한 번 듣기 시작한 말은 계속해서 들렸다. 팀원들이 뭐만 하면 다 나를 찾기 시작했다. 자잘한 것까지.



이제 됐다.



서서히 회사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같이 회의를 두어 번 해본 부서에서도 내가 고생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선 내가 평택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것에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자기들은 주 1-2회 재택근무하고, 나머지 3일을 출근하는 것도 가기 싫어 죽겠는데 대체 어떻게 다니냐는 것이었다.



내 대답의 포인트는 표정은 꽤나 지치고 힘들어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긍정적이어야 했다.



“아 저 진짜 힘들어요. 죽겠어요. 하..” (X)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한데… 해야죠 뭐. 얻는 게 있겠죠. “ (O)



출퇴근길 왕복 4시간을 독서하는 데 쓰는 것도 흘렸다. 남얘기 하는 걸 특히나 매우 좋아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소문은 매우 빠른 발이 달렸다.



“너 부서이동 생각 있니?”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기회를 얻었다. 빛을 발했다.


깜깜한 새벽에 출근하면서 늘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말이 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 사라지지 마라그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려라

퇴장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누군가가 나를 기어이 본다  by 아널드 슈워제네거



퇴장하지 않기 위한 내 무기는 분노였다. 분노로 칼을 갈았다.   



하중을 받으며 강해지기 위한 수단은 바로 ‘악’ 감정 그 자체였다. 긍정적인 태도는 딱 한 가지에서 나타났다. 이 악감정으로 나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




"저 친구는 참 안 됐어."

사람이란 모름지기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불행한 상황에 한 번쯤은 놓여보는 것도 좋다.

겨울이 추울수록 그 겨울을 견뎌낸 나무가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고민과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크게 성장하고 진정한 행복을 붙잡을 수 있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참 안됐던 친구에 속해본 사람으로써 감히 말한다.

‘이 고통으로 나는 크게 성장하고 행복할 거야'와 같은 긍정적인 태도는 그 고통이 끝나고 나서 반추해도 늦지 않다. 그 고통을 무사히 겪고 끝내어, 또 다른 고통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 시간 동안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다름 아닌 '악'의 감정과 에너지였다.


다만, 악의 감정에 한없이 매몰되지는 말고, 그 야무진놈을 부디 잘 써먹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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